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23] 산사 열매 익는 여름, 후투티 노래 들리는 듯

bindol 2021. 8. 20. 05:57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23] 산사 열매 익는 여름, 후투티 노래 들리는 듯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입력 2021.08.20 03:00

 

심사정, ‘화조화(花鳥畵·1758년)’, 종이에 담채, 38.5x29.0㎝, 개인소장

 

조선 후기의 문인 화가 심사정은 산수화를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많은 그림을 남겼다. 그의 나이 52세(1758년) 때 그린 화조화 속으로 들어가 본다. 잎사귀가 독특한 나무 한 그루와 점박이 열매, 그리고 머리 모양이 특별한 새 한 마리가 금방 눈에 들어온다. 그림에는 초여름을 뜻하는 맹하(孟夏)에 그렸다는 글귀가 있지만 배경이 된 계절은 이보다 늦은 양력 8월 중하순으로 짐작된다.

 

대부분의 나뭇잎은 긴 타원형의 갸름한 모양이 기본이다. 잎 가장자리는 밋밋하거나 얕은 톱니를 가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그림처럼 가운데의 잎맥까지 불규칙하고 깊게 파인 잎은 산사나무뿐이다. 사과나무와 가까운 친척인 산사나무 열매는 작은 구슬 크기로 모양은 사과를 닮았다. 새콤달콤하고 아삭아삭한 사과 맛이 난다. 사람이 간식으로 먹을 수 있으며 열매는 산사자(山査子)라 하여 주요 약재로 쓰인다. ‘산림경제’에는 ‘산속 곳곳에 나는데 반쯤 익어 맛이 시고 떫은 것을 채취하여 약에 넣는다.’고 했다. 약용 혹은 관상식물로서 옛사람들은 흔히 집 근처에 심고 가꾸었으니 화가에게도 친숙했을 터다.

 

산사나무는 5월이면 하얀 꽃이 무리지어 피어 우리의 늦봄을 한층 환하게 만들어 준다. 곧 꽃이 진 자리마다 초록 열매를 매달아 차츰 굵어진다. 여름이 짙어갈 즈음 열매는 그림처럼 옅은 주황색을 거쳐 가을이면 빨갛게 익는다. 화가는 익어가는 어느 시점을 놓치지 않았다. 열매의 윗부분에는 꽃받침 자국을 나타내는 까만 점이 5개씩 있다. 실제로 산사나무를 포함한 장미과 식물은 5개의 꽃잎과 꽃받침 흔적이 열매에 남는다. 표면에 점점이 찍힌 흰 점은 열매가 다 익어도 그대로 남는다. 잎에서 열매까지 산사나무의 독특한 특징을 화가는 예리한 관찰력으로 있는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산사나무는 실제로 줄기에 드문드문 가시가 있는데, 그림 속에서도 가시를 찾을 수 있을 정도다.

 

왼쪽으로 뻗은 가느다란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새는 후투티다. 머리의 깃털이 크고 길어서 산(山)자를 2~3겹 중첩시킨 듯 한 모양의 정자관이 연상된다. 후투티는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옛 그림에 심심찮게 등장하며, 이 그림 외에 작가의 다른 작품 ‘산조간화(山鳥看花)’ 등에서도 만날 수 있다. 후투티는 여름 철새로 오디새라고도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