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規範의 자원을 풀어 달라는 독자의 요청이 있었다. 規範은 인간이 행동하거나 판단할 때 마땅히 따르고 지켜야 할 가치판단의 기준을 말한다. 한자가 만들어질 당시 그러한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規는 소전체에서 夫와 見으로 구성되었는데, 夫는 사람의 정면 모습(大·대)에 비녀를 꽂은 모습을 그려 ‘성인이 된 남자’를 나타냈고, 見은 사람(인·인)과 눈(目·목)을 그려 눈을 크게 뜨고 사물을 관찰하는 모습에서 ‘보다’는 뜻을 형상화했다.
그래서 規는 글자 그대로 성인 남자(夫)가 보는(見) 것을 말한다. 여기서 성인 남자는 결혼한 남자를 뜻한다. 결혼하지 못한 남자는 성인 대우를 받지 못했을 것이고, 결혼은 충동적인 젊은 남자를 판단력 있고 책임감 있는 성숙한 남자로 만든다.
이처럼 고대 중국에서는 나이 든 성인의 지혜를 최고의 판단 준거라고 생각했다. 성인이 된 남자(夫)가 보고(見) 판단하는 것, 그것을 당시 사람들은 그들이 따라야 할 사회의 法度(법도)이자 규범으로 생각했으며, 그 결과 規에는 法度나 典範(전범)이라는 뜻이 생겼다. 그것은 고대 중국이 정착 농경을 일찍부터 시작한 사회로, 이동 없이 한 곳에 정착해 삶을 꾸려 나갔기 때문에 경험이 중시되었고 경험의 중시는 연장자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졌던 문화적 배경과 관련되어 있다.
範은 소전체에서 원래 수레(車·거)로 길을 떠날 때 도로의 신에게 지내는 제사’를 뜻했고, 범은 대나무로 만든 모형 틀을 뜻하여 서로 다른 글자였다. 하지만 範은 범과 글자가 비슷하여 자주 혼동해 쓰이면서, 지금은 모범이라는 의미의 범이 쓰일 자리를 範이 모두 차지하고 말았다.
범은 의미부인 竹(대 죽)과 소리부인 氾으로 구성되어, 대나무로 만든 모형을 말했다. ‘통속문’에서는 ‘흙으로 만든 형틀을 型(거푸집 형), 쇠로 만든 것을 熔(鎔·녹일 용), 나무로 만든 것을 模(법 모), 대(竹)로 만든 것을 범이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범은 模範에서와 같이 어떤 기물을 만들어 내는 표준, 즉 거푸집이라는 의미이다. 거푸집은 동일한 형태를 찍어내는 표준이 되기에 범에는 표준이라는 뜻이 담겼다. 그래서 範圍(범위)는 표준(範)을 둘러싼(圍·위) 주위를 말하고, 範疇(범주)는 거푸집이라는 틀(範)에서 만들어져 나온 것을 밭두둑(疇)처럼 구분해 놓은 분류를 말하며, 師範(사범)은 선생(師)의 자질을 만들어 내는(範) 곳을 말한다.
하영삼 경성대 교수 ysh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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