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사람들은 法과 正義를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자면 法과 正義는 동일한 것이 아니다. 法은 水(물 수)와 去(갈 거)로 이루어져 물(水)의 흐르는(去) 속성을 강조했다. 물은 언제나 낮은 곳으로 흐르는 항상성을 지닌다. 이는 法이 보편성과 일관성과 형평성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法의 자형을 역추적하여 금문(왼쪽 그림)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에는 치(해태 치)가 덧붙여져 있다. 해태는 옳지 않은 사람을 자신의 뿔로 받아 죽여 버린다는 전설의 동물이다.
해태의 존재는 法에 기초한 통치가 확립되기 이전 징벌의 형태를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이후 치가 생략됨으로써 法이 징벌의 의미를 넘어 물의 흐름이 지니는 항상성과 보편성처럼 모든 사람에게 공통으로 적용되어야만 하는 규약이나 약속의 의미가 강조되었다.
하지만 正義는 성문화된 규약이라기보다는 개별의 공동체가 주어진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의 정당성을 뜻한다고 여겨진다. 우선 正은 원래 국(나라 국)과 止(갈 지)로 구성되어 성(국)을 정벌하러 가는(止) 모습으로써 征伐(정벌)의 의미를 그렸는데, 국이 가로획(一)으로 변해 지금의 正이 되었다. 征伐 즉 전쟁은 언제나 초법적이요 法의 바깥에 있지만, 전쟁은 약탈이나 침범을 당했다는 등의 타당하고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올바른 명분을 가질 때 가능하다. 여기서 正에 ‘바르다’는 뜻이 나왔고, 그러자 원래의 뜻은 척(조금 걸을 척)을 더해 征으로 분화했다.
義는 갑골문(오른쪽 그림)에서도 羊의 뿔과 날이 여럿 달린 창을 그린 我로 구성되어, 창(我)에 양 뿔(羊) 장식을 단 ‘의장용 창’을 그렸다. 여기에서의 羊은 해태를 ‘뿔이 하나 달린 양’으로 묘사했듯 해태와 통하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我는 외부의 적과 싸우기 위한 무기가 아니라 내부의 적을 처단함으로써 단결을 고취하기 위한 상징으로서의 창이기 때문에, ‘의장용 창’인 我가 ‘우리’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義는 ‘정의를 실현하고 정의를 구현하는 창’인 셈이다.
이렇게 볼 때 法은 보편성과 형평성을 요구하는 규약이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에서도 보듯, 법의 적용과 해석은 그 속에 정의를 포함할 수도 있고 정의를 포함하지 않을 수도 있다. 반면 正義는 法과는 달리 정해진 규약이 아니기에 강제력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의에 어긋난 행동은 도덕적 지탄의 대상이 될 뿐이다.
하영삼 경성대 교수 ysh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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