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 나오는 김정은의 커다란 핑크 돼지 貯金筒(저금통)이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지대하다고 한다. 동전을 집에 쌓아 놓아 유통되지 못하게 함으로써 동전을 찍어내는데 막대한 돈이 들어가게 한 것이 첫째요, 그 동전을 바꾸는데 드는 인건비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 둘째 이유란다.
貯는 원래 저로 썼는데, 지금의 자형에서는 면(집 면)과 丁(넷째천간 정)으로 구성되었지만 사실은 면과 가로획(一)으로 이루어졌던 것이 잘못 변한 글자이다.
저는 갑골문에서 궤짝 속에 어떤 물건(一)이 들어 있는 모습인데, 어떤 경우(왼쪽 그림)에는 조개(貝·패)를 그려 넣어 그것이 조개임을 구체화했다. 금문에 들면서 貝가 궤짝 바깥으로 나와 아래쪽에 위치했고 소전체에서 다시 좌우구조로 되었다가, 이후 궤짝이 면으로 변해 지금의 貯가 완성되었다. 貝는 옛날 화폐로 쓰였기 때문에 돈이나 재물을 상징한다. 그래서 貯는 궤짝 속에 조개화폐와 같은 재물을 모아 둔 모습으로 ‘쌓아두다’는 의미를 그려낸 글자이다.
저는 貯蓄에서도 보듯 오랜 기간의 지속적인 노력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저는 ‘쌓다’는 의미 이외에도 ‘오래’라는 뜻을 가지기도 한다. 예컨대 佇는 사람(人·인)이 오랫동안(저)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을 말하며, 저는 오랫동안(저) 서 있는(立·입) 것을 강조한 글자이다.
蓄은 艸(풀 초)와 畜으로 구성되어 곡물(艸)을 비축하는(畜) 것을 말한다. 畜은 갑골문(오른쪽 그림)에서 실타래처럼 꼬인 창자와 그 아래로 달린 밥통을 그렸는데 밥통 속에 음식물이 들어 있는 모습을 형상하여 胃(위) 속에 음식물이 ‘쌓이다’는 의미가, 다시 ‘먹이다’는 뜻이 나왔다.
소의 胃에서 보듯 동물은 위로 되새김질도 하고 인간과는 달리 음식을 거기에 저장하기도 한다. 또 동물의 위는 원시시대 물을 긷거나 저장하는 도구로, 여행 때에는 물통으로 요긴하게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畜에는 ‘저장하다’는 의미가 생겼고, 家畜(가축)은 사람들이 필요할 때 쓸 수 있도록 집(家)에서 기르는(畜) 동물을 말한다.
이후 정착농경이 본격화하면서 ‘저축’은 주로 곡물의 저장을 의미했고 그래서 艸(풀 초)를 더한 蓄과 禾(벼 화)를 더한 · 같은 글자들이 나왔는데, 의미는 모두 동일하다.
지금은 消費(소비)가 미덕인 시대라 하지만 貯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여전한 미덕임에 틀림없다.
하영삼 경성대 교수 ysh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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