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止는 사람의 ‘발’을 그렸는데, 이후 발가락을 셋으로 상징화해 지금처럼 되었다. 발은 신체의 일부기도 하지만 가야 할 때와 멈출 때를 결정하기도 하고, 나아가 역사를 일구어 나가는 것 또한 인간의 발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止는 ‘가다’와 ‘그치다’는 물론 인간의 과거 흔적에서부터 다가올 미래까지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발전했다.
우선 步(걸을 보), 涉(건널 섭), 歲(해 세) 등은 ‘발’의 의미로 쓰였다. 步는 두 발을 그려 걷는 모습을, 涉은 두 발 중 한 발이 이미 물(水·수)을 ‘건넌’ 모습이다. 歲는 날이 크고 둥근 낫(i·월)으로 걸어가며(步) 수확하는 모습이며, 수확에서 다음 수확 때까지를 ‘1년’이라 했다.
둘째, ‘가다’는 뜻으로 쓰인 경우이다. 正(바를 정)은 성(국·국)을 정벌하러 가는(止) 모습인데 이후 국이 가로획으로 변했다. 정벌은 언제나 정당할 때만 가능했기에 ‘정의’의 뜻이 생겼고, 원래 뜻은 征(칠 정)으로 분화했다. 歪(비뚤 왜)는 바르지(正) 않다(不·불)는 뜻이다.
또 武(굳셀 무)는 무기(戈·과)를 메고 가는(止) ‘씩씩한 모습’을 그렸다. 이를 두고 혹자는 전쟁(戈)을 그치게(止) 하는 것이 바로 ‘무력(武)’이라 풀이하지만 이는 대단히 위험한 생각이다. 그것은 무력보다 대화가 전쟁을 그치게 하는 더욱 유효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歷(지낼 력), 此(이 차), 企(꾀할 기) 등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시간과 관련되어 있다. 과거란 인간이 걸어온 흔적이며, 현재란 인간이 서 있는 자리이며, 미래란 인간이 바라는 그 무엇이라는 점에서 이들은 철저히 인간중심적인 사고를 그렸다.
歷은 원래 곡식(h·력)이 제대로 자랐는지를 걸어가며(止) 확인하는 모습에서 ‘지나감’을 그렸고, 지나간 과거를 다 모으면 바로 歷史(역사)가 된다. 현재란 此처럼 사람(匕·비)이 발(止)로 밟고 있는 ‘이곳’이며, 바로 이 공간이다. 또 미래란 企에서처럼 사람(人·인)이 발(止)을 돋운 채 무엇인가를 간절히 바라는 그것이다.
하영삼 경성대 교수 ysh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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