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世說新語] [642] 무성요예(無聲要譽)
입력 2021.09.30 03:00
이상황(李相璜·1763~1841)이 충청도 암행어사가 되어 내려갔다. 어둑한 새벽 괴산군에 닿을 무렵, 웬 백성이 나무 조각에 진흙을 묻혀 꽂고 있었다. 수십 보를 더 걸어가 새 나무 조각에 진흙을 묻히더니 다시 이를 세웠다. 이렇게 다섯 개를 세웠다. 어사가 목비(木碑)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게 무언가?” “선정비(善政碑)올시다. 나그네는 저게 선정비인 줄도 모르신단 말씀이오?” “진흙칠은 어째서?” 그가 대답했다. “암행어사가 떴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이방이 저를 불러 이 선정비 열 개를 주더니, 동쪽 길에 다섯 개, 서쪽 길에 다섯 개를 세우랍디다. 눈먼 어사가 이걸 진짜 선정비로 여길까봐 진흙을 묻혀 세우는 게지요.”
나무에 사또의 선정을 칭송하는 내용을 써서 길가에 세운다. 어사가 어느 길로 올지 몰라, 동쪽 어귀에 다섯 개, 서쪽 어귀에 다섯 개씩 세워 보험을 들었다.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지라 진흙을 묻혀 글자를 안 보이게 하고, 새것이 아닌 것처럼 꾸몄다. 어사에게 좋은 점수를 얻으려는 얄팍한 수작이었다. 그는 괴산군으로 들어가 여타 비리와 함께 가장 먼저 진흙 묻힌 목비를 세우게 한 죄를 꼽아 고을 사또를 봉고파직(封庫罷職) 시켜 버렸다. ‘목민심서’에 나온다.
‘인조실록’ 1631년 12월 12일 기사에는 “근래 목민관이 오로지 명예 구하는 것만 일삼아, 부임하자마자 토호(土豪)와 품관(品官)의 무리와 결탁해서 목비부터 먼저 세워 길가는 자에게 과시하고, 나중에는 석비를 세워 민간에서 쌀을 모아 그 값을 대신 치러주기까지 합니다. 각도의 감사에게 명하여 일체 엄금케 하시고, 고을 수령으로 명예를 구해 비석을 세우는 자는 무겁게 다스리소서”라는 내용이 실려있다.
‘영조실록’ 1725년 1월 23일 기사에도 이조판서 민진원(閔鎭遠·1664~1736)이, 고을 수령이 재임 중에 치적비를 세우고 심지어 생사당(生祠堂)까지 세우는 폐단을 지적한 내용이 보인다. 그걸 치적으로 꼽아 높은 고과 점수를 매기는 감사의 행태도 함께 고발해 실적 없이 명예만 구하는 무성요예(無聲要譽)의 행위를 처벌할 것을 주청했다. 할 일은 안 하고 칭찬만 원한다. 실상은 상관없고 겉 꾸밈이 중요하다. 문제는 그게 먹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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