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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평중 칼럼] 권력자의 정신병리는 검증 대상이다

bindol 2021. 10. 29. 04:21

[윤평중 칼럼] 권력자의 정신병리는 검증 대상이다

윤평중 한신대 명예교수·정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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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1.10.28 17:37 | 수정 2021.10.29 00:00

 

정신과 의사 강윤형 박사의 ‘이재명 소시오패스’ 발언이 일파만파다. 강 박사는 한 유튜브 방송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소시오패스(sociopath·반사회적 성격장애) 경향이 있다”고 평했다. 이 후보가 “굉장히 매력적이고 사람들을 현혹할 수 있는 장기를 가졌지만 사람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무자비하게 타인을 이용하는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는 촌평이다. 그런 사람이 여당 대선 후보라는 사실이 두렵다는 것이다.

원희룡 국민의힘 대선예비후보 부인 강윤형 씨가 20일 매일신문 유튜브 채널 '관풍루'에 나와 이재명 후보를 소시오 패스나 앤티쇼셜이라고 했다./매일신문 유튜브TV 관풍루

 

과거에도 유력 정치인의 심리 분석이 화제가 되곤 했다. 서울대 의대 출신 정신과 전문의인 강 박사의 발언도 의미심장하지만 부적절한 부분이 있다. 강 박사가 원희룡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의 배우자라는 사실이다. 원 후보가 ‘이재명 타도’의 선봉장으로 나선 터에 전문 지식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나아가 강 박사는 “가난했지만 따뜻하고 인자한 부모님 밑에서 사랑받고 자란” 원 후보와 그렇지 못한 이재명 후보를 비교해 가족 관계에서 비롯된 정신적 문제로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다.

 

전문가들은 ‘대면 검사와 허가 없이는 공인의 정신 건강에 대한 의견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골드워터 규칙’과 ‘개인의 병리가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것이 명백하면 공익을 위해 경고해야 한다’는 ‘경고의 의무’ 사이에서 움직인다. 실제로 미국의 저명한 정신과 의사와 심리학자 27명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7년 골드워터 규칙을 넘어 ‘도널드 트럼프라는 위험한 사례’를 펴냈다. 트럼프를 소시오패스·자기애적 인격장애·편집증 등의 복합 증상을 보이는 ‘위험 인물’로 규정해 미국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트럼프가 대통령 재직 시 날마다 쏟아낸 거짓말과 견강부회, 자아도취,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감각, 약자에 대한 경멸과 혐오, 다른 사람 괴롭히기, 강자 숭배 등은 어두운 그의 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트럼프의 이런 특성은 공인(公人)다움 및 지도자의 자질과 정면에서 충돌하기 때문에 국가에 치명적이다. 그 결과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어떤 종류의 실패도 인정하지 않는 인간이며 대선 패배에 불복해 미국을 미증유의 혼란과 분열로 몰고 갈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했다. 불행하게도 이런 예측은 대부분 사실로 판명됐다.

 

독재자의 정신병리에 대한 고전적 연구로는 월터 랭어(Walter C. Langer·1899~1981)의 ‘히틀러의 정신분석’이 유명하다. 프로이트의 딸이자 학문적 계승자인 안나 프로이트에게 빈에서 훈련받고 하버드를 졸업한 랭어는 가학 및 피학 심리가 섞인 히틀러의 내면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자기파멸적 성향인 히틀러가 마지막 궁지에 몰렸을 때 ‘극적인 자살’을 할 가능성이 높고 세계 전체를 초토화하려 할 것이라는 1943년 랭어의 예측은 정확한 것으로 드러났다. 자살 직전 히틀러는 유럽의 수도 파리를 불태워버리라고 현지 주둔군 사령관 콜티츠(D. Choltitz·1894~1966)에게 거듭 지시했고, 독일의 공업 단지와 도로·항만·철도 등도 모조리 파괴하라고 군수부 장관 알베르트 슈페어(A. Speer·1905~1981)에게 명령했다. 이들이 히틀러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 건 역사의 행운이었다.

 

제3제국 괴멸 직전까지 독일 민중의 광적인 지지를 누린 히틀러는 ‘자유에서 도피’한 당대 독일인들이 만든 괴물이었다. 트럼프라는 위험 인물의 득세는 ‘제국 미국’의 위기와 내적 부패의 산물이다. 단군 이래 최대의 부동산 비리로 온 국민을 분노케 한 대장동 게이트의 설계자이자 결재권자였던 이재명 후보가 ‘부동산 불로소득 공화국 타파’를 자신의 최대 공약으로 내세우는 모습은 기괴하기까지 하다. 절대 권력이 정의와 상식을 지워버린 병든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병적인 데가 있다. 인간 마음의 어두운 심연은 그만큼 어지럽다. 하지만 독재자의 정신병리는 공론 영역에서 철저히 검증되어야 한다. 히틀러는 세계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스탈린은 미국과의 최후 결전을 역사적 필연으로 믿은 편집증(偏執症·망상장애) 환자였다. 트럼프도 핵 단추를 누를 수 있는 미국 대통령이었다. 임기 말 트럼프가 혹시 개전(開戰) 명령을 내리지 않을지 미군 합참의장은 전전긍긍했다. 총체적 재앙을 부를 수 있는 권력자의 정신병리는 사회적 검증 대상이다. 이재명 후보나 윤석열 후보 등 그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