屠: 죽일 도 龍: 용 룡 技: 재주 기
‘도룡’의 기술은 재주가 제아무리 높은 수준이라도 쓸데없다는 말로서 ‘도룡지술(屠龍之術)’이라고도 한다. ‘장자(莊子)’ ‘열어구(列禦寇)’ 편에 나오는 말인데 장자가 지인(至人)과 성인을 설명하는 가운데서 유래된 말로서, 장자는 “도를 알기는 쉬우나 말하지 않기란 어렵다. 도를 알면서도 말하지 않음은 하늘을 좇는 것이고, 알면서 말하는 것은 인위(人爲)의 경지로 가는 것이다. 옛날 지인들은 하늘을 좇고 인위로 가지 않았다”고 하고는 바로 “주평만(朱평漫)이라는 사람은 용을 죽이는 방법을 지리익(支離益)에게 배우느라 천금이나 되는 가산을 탕진하여 삼 년 만에 그 재주를 이루었지만 쓸 데가 없었다(朱평漫學屠龍於支離益,單千金之家, 三年技成而無所用其巧)”고 했다.
장자의 논점은 성인이란 필연적인 일에 대해서도 필연으로 여기지 않으므로 마음속에 감정 다툼이 있을 수 없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필연적인 일이 아닌데도 필연으로 여기고 행동하므로 감정 다툼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 것은 마치 용을 죽이는 기술처럼 쓸모도 없는데 그것을 배우기 위해 돈을 낭비하는 것과 매한가지라는 논리다. 장자는 주평만과 지리익이라는 가공인물을 내세워 성인 본연의 자세를 가르치고, 대도란 우리 인간 세상에는 없다는 논리를 피력한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송(宋)나라 황정견(黃庭堅)도 ‘임위지송필희증(林爲之送筆戱贈)’이란 시에서 “이른 나이에 용을 죽이는 기술을 배웠으나 적용하려니 정녕 성글고 거칠기만 하네(早年學屠龍,適用固疏闊)”라고 했다.
그러나 역으로 ‘도룡’이란 말이 세속에서는 쓸모가 없어도 언젠가는 쓸모가 있는 진정한 기술이나 학문을 가진 인물을 말하기도 하니, ‘도룡수(屠龍手)’란 말이 그것이다. 용을 잡을 만한 뛰어난 기량이 범인(凡人)들의 눈에는 황당무계한 것처럼 보여도 그런 능력을 갖춘, 시대의 통찰력을 가진 이들 덕분에 더 값지고 멋진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 아니겠는가.
김원중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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