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 아닐 불 窺: 엿볼 규 於: 어조사 어 : 창 유
可: 옳을 가 以: 써 이 知: 알 지 天: 하늘 천 道: 길 도
한비자 ‘유로’ 편에 나오는 말로 “문을 나서지 않고도 천하를 알 수 있다(不出於戶, 可以知天下)”는 말과 호응관계를 이루는 말로, 천하의 이치를 터득하는 통찰력을 말한다.
한비는 이 편에서 이런 비유를 들었다. 왕수(王壽)란 자가 책을 짊어지고 가다가 주(周)나라 땅에서 서풍(徐馮)을 만나게 됐다. 서풍이 말했다. “일이란 실행하는 것이고, 실행 결과는 때에 따라서 나타나는데 그 상황은 항상 같지는 않다. 책은 옛 사람의 말을 기록한 것이고, 말은 지혜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 지혜로운 자는 책을 소장하지 않는다. 지금 그대는 어찌해서 책을 짊어지고 가는가?” 이에 왕수는 그 책을 불사르고 춤을 추었다.
지혜로운 자는 말로 사람을 가르치지 않고, 현명한 자는 책을 상자 속에 간직하지 않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일을 간과하지만 왕수는 바른 길로 다시 돌아간 셈이다. 즉, 배움이 책을 통해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터득한 것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더 있다. ‘유로’ 편에 “작은 것을 꿰뚫어볼 수 있는 것을 ‘명(明)’이라고 한다(見小曰明)”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낙엽 하나를 보고 천하의 가을을 안다는 말과 통한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정확하게 집어내는 능력으로 사소한 것의 의미까지도 포착하는 능력이 바로 ‘명’인 셈이다.
회남자(淮南子) ‘설산훈(說山訓)’ 편에도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고기 한 점 먹고 냄비 속의 고기 맛을 다 알고, 깃털과 숯을 매달아 놓고서 방 공기가 건조한지 습한지 알 수 있다. 이는 사소한 것으로 큰 것을 아는 것이다. ‘낙엽 하나를 보고 한 해가 저물어 가는 것을 알고(見一葉落, 而知歲之將暮), 병 속의 얼음을 보고 천하가 추워졌음을 안다(睹甁中之氷 而知天下之寒)’. 이것은 가까운 것으로 먼 것을 아는 것이다.”
문록(文錄)에 인용된 당대 시인의 시구에도 이와 유사한 문구가 있다. “산속 스님은 갑자를 헤아리지 않고, 낙엽 하나로 천하에 가을이 왔음을 아네(山僧不解數甲子, 一葉落知天下秋).”
이렇듯 세상의 이치를 아는 법은 의외로 널려 있다. 물론 그런 통찰력을 보여주는 사람은 드물다.
김원중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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