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주거공간의 가능성을 탐색한 ‘버티컬 빌리지’의 전시물
창조적인 관점을 확보하기 위해선 한 번쯤 자신의 생각을 뒤집어보는 게 필요하다. 하지만 오랜 시간 켜켜이 쌓인 관점과 해석, 그리고 그것이 총체화된 세계관은 쉽게 뒤집어지지 않는다. 본질적인 면에서 살펴보면 우리가 극단의 관점을 쉽게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극단은 꼭 ‘양쪽 끝’만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매몰되어 있다면 그 위치가 어디여도 ‘극단’이 될 수 있다.
중국 고전 ‘열자(列子)’ 양주편에서 양주는 우리가 잘 아는 백이와 숙제를 비롯한 여러 앞선 인물들에 대해 색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양주가 말했다.
“백이는 욕망이 없었던 게 아니다. 고결함을 자랑하는 것이 지나쳐 굶어 죽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전계는 정욕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정절을 자랑함이 지나쳐 자손이 적어지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고결함과 정절의 그릇됨이 이와 같다.… 원헌은 노나라에서 가난하게 지냈고, 자공은 위나라에서 재물을 불렸다. 원헌의 가난함은 생명을 손상시켰고, 자공의 재물 증식은 몸과 마음을 지치게 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사람이 물었다.
“그렇다면 가난함도 좋지 않고, 재물 증식도 좋지 않으니, 좋은 것은 어떤 것에 있습니까.”
양주가 대답했다.
“좋은 것은 삶을 즐기고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데에 있다. 따라서 삶을 잘 즐기는 사람은 가난하지 않으며, 몸과 마음을 편하게 잘하는 사람은 재물 증식을 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는 해석에 따라 올바른 삶의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극단의 위험성’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다. ‘집단극단화(group polarization)’라는 말이 있다. 같은 집단에서만 모여 비슷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그것이 고정화되어 더이상 벗어날 수 없는 ‘극단적 사고’로 변한다는 것이다. 이는 한 개인의 사고과정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동일한 관점과 맥락에서만 해석하고 그것을 확신하는 과정이 지속되면 이 역시 ‘극단’으로 매몰된다.
이러한 극단에서 벗어나는 가장 유용한 방법 중의 하나는 현재 자신의 생각을 또다시 극단적으로 부정해보는 일이다. 인위적인 이러한 반전의 사고를 통해 원래 자신이 가지고 있던 극단과 결별하고, 때로는 절충하다보면 예전에는 가지지 못했던 새로운 사고의 원천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남훈 경제 경영 전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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