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모호한 물체를 다양한 시선으로 살펴보는 것은 창의성의 원천이 된다. 동아일보DB
‘근거와 증명’이라는 고정된 틀을 깨고 창의성으로 가는 길을 열어준 ‘애매모호함’은 이른바 ‘이중사고(Double Think)’라는 것에 의해 강화될 수 있다. 이성과 합리는 기본적으로 ‘정합성(整合性)’을 추구한다. 부정과 긍정이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단일화된 진실을 원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중적인 것, 겹쳐져 있는 것, 섞여 있는 것들은 애매모호함이라는 낙인을 찍기에 아주 좋다. 이 애매모호함을 극대화시킨 것이 바로 ‘이중사고’다. 조지 오웰의 ‘1984’에 등장하는 이 개념은 독재의 화신인 ‘빅브러더’가 인간의 본성을 말살하고 현실을 통제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했다.
하지만 ‘창의성’이라는 개념에서 보면 이중사고는 애매모호함을 극대화해 창의성의 에너지를 확보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이중사고란 ‘흑과 백은 같지 않다, 2 더하기 2는 4’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흑과 백은 같다, 2 더하기 2는 5’라는 생각까지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이건 한 사람이 두 가지 상반된 신념을 동시에 가지며, 그 두 가지 신념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심지어 오웰은 작품 속에서 “이중사고를 하면서 바로 이 생각을 지워버려야 한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이성의 틀에서 본다면 이런 이중사고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애매모호함의 극치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창의적 생각의 본류에는 이런 이중사고가 담겨 있다. 현실을 보지만 현실을 부정하는 것, 아직 생기지도 않은 미래를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상상해보는 것, 모두가 ‘노(No)’라고 말하는 것에 정반대인 ‘예스(yes)’를 해보는 것. 바로 이렇게 ‘부정과 긍정’이 혼재하고 ‘존재와 부재’가 공존하며 ‘노와 예스’가 겹쳐 있는 건 이중사고의 전형적인 형태이자 새로움을 찾아가는 창의적인 태도의 원천이다.
사실 투자라는 것 자체도 아직 생기지 않고, 보이지도 않는 ‘미래의 가치’를 기대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애매모호함을 수용하고 극단적인 두 가지 신념을 동시에 가지는 이중사고를 하는 것 자체가 이미 창의적 투자행위이기도 하다.
이남훈 경제 경영 전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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