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column

[서지문의 뉴스로 책읽기] [116] 타인의 명예로 예술적 유희를?

bindol 2018. 9. 4. 05:05

성경 '요한복음 8장 32절'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지난달 28일 서울중앙지법 중법정에서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역사문제연구소 제작)의 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심리, 공판을 방청했다. 이날 심리한 사안은 우리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가 미국 본토에서 무슨 일인가로 기소를 당해서 하와이 법정으로 이관되어 무혐의처분을 받았는데, 이 다큐 제작자들이 존재하지 않는 범인 얼굴 사진(mug shot·머그샷)을 합성해서 미국 경찰국 문서인 양 다큐에 삽입해서 마치 이 박사가 여성 농락죄로 미국 경찰에 체포되었던 것처럼 제시했다는 것이다.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이니, 문제의 다큐가 없는 기록이나 서류를 조작해서 관련 인물의 명예를 훼손했는가를 판단해야 할 텐데, 이 법정은 웬일인지 인물 사진을 허위로 합성해서 범죄자로 제시하는 것이 예술적 자유에 속하는가를 따지는 자리가 되었다.

피고인 측 증인으로 출석한 어느 영화 평론가는 역사 다큐에서 그런 합성이 예술적 자유에 속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역사 다큐라 해도 제작자의 주관이 배제될 수 없는 것이니 패러디는 표현의 자유에 속하고, 패러디가 허용되지 않는다면 문화계는 존속할 수 없다고도 주장했다. 검찰 측은 반대신문에서 바로 그 평론가가, 이 다큐가 처음 나왔을 때 사실에 충실한 다큐라는 점을 매우 높이 평가했던 평론을 제시하며 어느 쪽이 그의 진정한 견해인가를 물었는데, 재판장은 검찰 측이 피고인 측 증인으로부터 피고에게 불리한 진술을 유도하겠다고 사전에 재판부에 고지하지 않았으므로 그런 신문은 안 된다고 가로막았다.

정말 유능한 검사나 변호사는 상대편 증인 진술의 허점을 파헤쳐서 진실이 드러나게 하는 것인데, 우리 법정에서는 왜 그것이 안 될까? 재판장은 검사 측 신문을 막고 나서 배심원들에게 '이 재판은 그런 사진 합성이 예술적 자유에 속하는지를 판단하는 자리'라고 지침을 주었다. 대부분 새파란 젊은이들로 보이는 배심 원들의 평결은 건국 대통령을 파렴치범으로 조작하는 것도 예술적 자유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예수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했는데, 다큐 제작자들에게는 진실은 족쇄이고 예술적 유희가 그들을 자유케 하는 모양이다. 이제 역사 다큐는 '예술 역사 다큐'로 개칭되어야겠고, 우리 국민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다큐의 소재가 되는 불상사를 면하기만 바라야겠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9/03/201809030345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