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시행착오로 얻은 통계 지혜
정권 반하는 결과라도 왜곡 금물
통계청장에 코드 인사는 안 돼
통계의 중립성과 독립성은 생명
호모 사피엔스는 약 1만년 전 농경시대에 정착 생활을 했다. 그 전에 호모 사피엔스는 19만년 동안 수렵 채취 생활을 했다. 이들은 당시 일주일에 약 두 차례 수렵채취 활동을 했다고 추정되고 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사흘 정도는 먹거리를 보관할 수 있음을 터득한 것이다. 자료와 통계는 바로 이런 것이고, 사실을 추론하는 과정에서 통계의 역할은 필수적이었다. 조그마한 부족집단이 거대한 국가로 변하면서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과학적 방법이 필요했다. 이에 따라 통계학이라는 학문적 체계를 갖추게 됐다. 통계학은 영어로 ‘Statistics’인데 이는 국가(State)를 통치하는 데 필요한 학문이라는 어원을 갖고 있다. 통계학은 크게 세 단계로 정의한다.① 자료를 모으고 (sampling), ②자료를 분석하며 (analysis), ③이를 바탕으로 일반화된 결론을 끌어내는(generalization) 학문이다. 이 세 가지 과정 중에 어느 하나라도 투명하지 않게 처리하거나 왜곡하거나 조작하면 안 된다. 영국 총리를 지낸 벤저민 디스레일리(1804~1881)가 언급했듯이 하나라도 어긋난 통계는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보다 더한 거짓말쟁이가 된다. 통계학을 조금 아는 사람들이 가장 쉽게 유혹을 받는 과정이 자료 수집 과정이다. 자료의 일부만 조작하면 일확천금을 벌거나 노벨상 수상 후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피 한 방울로 수백 가지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의료용 진단 키트를 발명했다고 주장했던 미국 테라노스의 최고경영자(CEO)도, 일본의 만능 세포 논문조작의 주인공도 이런 자료 조작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다. 즉, 통계 자료의 생명은 바로 정직함에 있다. “자료 그 자체에 충실하라(Let the data speak for themselves)”는 말이 있다. 과학적 성과의 입증이나 정부의 정책을 뒷받침하는 과정에서 자료나 통계가 조금이라도 왜곡되거나 조작되면 안 된다. 이를 흔히 우리는 통계의 중립성과 독립성이라 부른다. 그중에서도 정치적으로 독립돼야 함은 기본이라 하겠다. 통계 자료를 국가의 중차대한 정책에 활용하는 과정에 단기적으로 현재의 정책과 반하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이를 숨기거나 왜곡하지 말아야 함은 물론이다. 나아가 그 결과를 겸허히 인정하고 받아들여서 그 자료가 내포하는 진정한 의미를 탐색하고, 필요하다면 그 정책을 수정해야 마땅하다. 국가의 규모가 커질수록 자료를 다루는 통계의 역할은 더 중요해진다. 통계청은 1948년 공보처 통계국을 시작으로 1955년 내무부 통계국, 1961년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으로 존속해 오다가 1990년 12월 통계청으로 승격해 지금에 이른다. 한국 정부의 통계기관 역사에서 보듯이 통계는 경제정책의 보조역할로 출발했다. 이는 개발도상국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문제의 원활한 정책 수립을 위해 당연한 일이었으며 정부기관의 통계 책임자 역시 경제학을 전공한 정치 관료가 많았다. 그 시절에는 통계학이 경제학의 보조학문 정도로 사용됐으나 이제는 경제학·의학·생물학·공학·사회과학 등 여러 학문 분야에서 통계학적 기법을 빌어서 활용하고 있다. 통계청은 경제 관련 통계만 다루는 곳이 아니다. 경제 이외에도 인구·환경·의료·복지 등 여러 분야의 자료를 제대로 수집하고 분석하고 예측해야 한다. 요즘 회자하는 빅 데이터, 인공지능, 기계학습, 데이터 사이언스의 중심에 통계학이 있다.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통계학이 가장 중요한 학문이 될 것이라 예언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다루는 국가기관인 통계청을 지휘·감독하는 체제는 여전히 30년 전 모습이다. 이는 아직도 한국이 정치적 후진국임을 자인하는 것이다. 최근 통계청장을 갑자기 경질한 인사는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현 정부의 통계에 대한 중립성과 독립성에 대한 의지를 의심케 한다. 정부의 여러 부처 수장 자리에 뜻을 같이하는 인사를 임명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통계청장만은 고도의 전문성과 정치적 독립성을 갖춘 사람이어야 하며 그의 임기를 철저히 보장해야 한다. 코드 인사 논란이 조금이라도 있어서는 절대 안 되는 자리다. 자료는 정직함을 생명으로 여긴다. 정직한 자료를 근거로 제대로 분석하고 예측해야 한다. 대학입시를 비롯한 교육정책 등에서 포퓰리즘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통계를 이용해 온 사례가 계속 나온다. 어떤 경우에도 통계가 진실을 왜곡하는 도구가 되거나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길 바란다. 김충락 부산대 통계학과 교수·한국통계학회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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