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공찬전과 한글 문학]
한글로 표기된 최초 소설 '설공찬전'… 본격적 한글 소설 등장에 큰 역할
최초 한글 원작 '홍길동전'과 함께 문자 보급, 서민 문화 확산에 기여
당대 정치와 세태 비판한 내용으로 출간 당시엔 금서로 지정됐어요
착한 동생 흥부와 욕심 많은 형 놀부가 주인공인 고전소설 '흥부전'의 가장 오래된 한글 필사본이 발견돼 화제예요. '흥보만보록'이라는 제목으로 1833년에 쓰였는데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흥부전'보다 20여 년 먼저 쓰인 것으로 짐작하지요.
그런데 이 책이 더욱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그동안 잘 알려진 흥부와 놀부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 나오기 때문이에요. 흥부와 놀부의 성씨가 연씨가 아니라 장씨이며 배경도 충청·전라·경상 지역이 아니라 평양으로 나와요. 그뿐만 아니라 흥부와 놀부 모두 평민 출신의 부잣집 데릴사위로 나오고, 흥부가 무과에 급제해 황해도 개풍군을 본관으로 하는 덕수 장씨의 시조가 됐다는 내용도 있죠. 교과서와 동화책 속 흥부전을 다시 써야 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예요.
이처럼 나중에 새로 발견된 자료 때문에 고전소설의 역사가 바뀔 만한 사건이 약 20여 년 전에도 있었어요. 1997년 무렵에도 한글로 기록된 가장 오래된 소설이 발견되어 최초의 한글소설에 대한 뜨거운 논쟁이 있었거든요.
◇'설공찬전'을 발견하다
지난 1997년 국사편찬위원회는 "지금까지 기록으로만 알려졌던 채수(蔡壽·1449~1515)의 '설공찬전'을 찾아냈다"고 발표했어요. 승정원 승지를 지낸 이문건(李文健·1494∼1567)이 1535~1567년 쓴 '묵재일기'의 뒷면에 한글로 기록돼 있는 번역본이었죠.
▲ /그림=정서용
원래 채수가 한문으로 쓴 원작 '설공찬전'은 조선 중종 때인 1511년 "요망한 내용으로 백성들의 정신을 홀리게 하고 풍속을 혼란스럽게 한다"는 이유로 모조리 불태워져 전해지지 않았는데, 국문본을 발견한 것이죠. 그전까지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은 조선 광해군 때인 1612년 무렵에 허균이 쓴 '홍길동전'으로 여겨왔는데 이보다 100여 년 전에 한글로 쓰인 소설이 발견됐으니 국문학계와 역사학계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어요. 나아가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을 '홍길동전'이 아니라 '설공찬전'으로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쟁이 일어났어요. "설공찬전은 한문소설을 국문으로 번역한 것이므로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로 보기 어렵다", "설공찬전이 한글로 표기된 소설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이니 최초의 한글소설이라고 봐야 한다" 이렇게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엇갈렸어요.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은?
국문학자들은 "이문건의 설공찬전이 한글로 표기된 가장 오래된 소설이지만 창작소설이 아니고 한문소설을 번역해 한글로 표기한 것이기에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로 인정하기가 어렵다"고 주장했어요.
다만 '설공찬전'이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이자 한문소설인 김시습의 '금오신화'(1465~1470) 바로 뒤를 잇는 고전소설이며, 이후 본격적인 한글소설이 등장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매우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했죠. 아직도 일반적으로 최초의 한글소설은 '홍길동전'이며, '설공찬전'은 "한글로 표기된 최초의 소설"로 보고 있어요. 그렇지만 그 뒤로도 최초의 한글소설에 대한 의견이 분분해,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에서 최초라는 말을 빼고 가르치고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해요.
그런데 과연 '설공찬전'이란 소설은 어떤 내용일까요? 젊은 나이에 죽은 설공찬이란 인물의 혼이 사촌 설공침의 몸에 들어가 저승에서의 경험담을 들려준다는 줄거리예요. 현실 세계에서 반역자들이 임금에게 바른 소리를 하다가 죽었지만 저승에서 좋은 벼슬을 하고 있다는 내용 등 당시의 정치적인 상황을 돌려서 비판하고 있어요. 이 때문에, 반정으로 집권한 중종은 책을 불태우고 백성이 못 읽게 했죠.
◇한글소설의 등장과 서민 문화
'홍길동전'이나 '설공찬전'처럼 옛날에 쓰인 소설을 고전소설이라고 불러요. 한문으로 쓴 한문소설과 한글로 쓴 국문소설이 있죠.
한문소설은 15세기 후반에 김시습이 쓴 '금오신화'를 비롯해 18세기 영·정조 때 실학자인 박지원이 쓴 '양반전', '허생전', '호질'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에요.
한글소설은 17세기에 허균이 쓴 '홍길동전'을 비롯해 김만중이 쓴 '구운몽'과 '사씨남정기' 등이 있어요. 여러 세대에 걸쳐 수많은 사람이 내용을 덧붙여 지은이를 정확하게 알 수 없는 '흥부전', '심청전', '춘향전' 등은 서민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죠.
이 작품들을 판소리계 소설이라고도 부르는데, 판소리의 영향을 받았거나 판소리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지요.
한글소설은 주로 17~18세기 서민과 여성들에게 널리 읽히며 큰 인기를 끌어, 한글 보급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당시 서민들에게 한글소설이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가게나 장터에서는 소설을 읽어주는 게 직업인 사람들이 등장했고, 책을 빌려주는 가게 '세책점'이 생기기도 했대요. 당시에 이렇게 한글소설이 큰 인기를 끌었던 것은 서민 문화의 발달과 깊은 관계가 있답니다.
지호진 어린이 역사저술가 기획·구성=박승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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