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뉴스 속의 한국사] 목숨 바쳐 인질 구해낸 신라의 충신

bindol 2021. 11. 7. 05:17

[박제상]

왕의 특명 받고 고구려·왜와 협상
말솜씨와 재치로 볼모 구출하고
"죽어도 왜의 신하가 되진 않겠다" 자신은 남아서 처형당했어요

북한에 18개월간 붙잡혀 있던 미국 대학생이 식물인간 상태로 돌아왔지만 결국 숨지고 말았어요. 미국 정부와 국민은 "북한 정부가 평범한 대학생을 외교 인질로 삼았다가 죽게 했다"며 크게 분노하고 있죠.

우리 역사에서도 인질 때문에 정치나 외교적으로 문제가 됐던 사건이 여럿 있었는데요. 고려 말 정몽주는 일본 규슈에 건너가 왜구에게 잡힌 고려인 인질 수백 명을 데려왔고, 조선 초기 이예는 15차례나 일본에 가서 협상을 통해 일본에 억울하게 붙잡혀 간 조선인 667명을 고국에 데려오는 활약을 했죠.

오늘은 죽음을 무릅쓰고 인질을 구출한 신라의 박제상에 대해 알아볼게요.

◇볼모가 된 신라의 두 왕자

392년 신라 내물왕은 사촌 동생인 실성을 고구려에 볼모로 보냈어요. 볼모는 나라 사이에 조약을 지키는 담보로 상대국에 억류해 두던 사람으로, 인질과 비슷한 처지예요. 내물왕은 볼모를 보내 고구려와 손잡고 백제와 왜(일본)를 견제하고자 했죠. 실성은 9년 동안 고구려에서 지내며 자신을 볼모로 보낸 내물왕에게 원한을 품다가 401년 신라로 돌아왔어요. 내물왕은 이듬해 죽었는데, 내물왕의 큰아들 눌지가 너무 어려 실성이 대신 왕위에 올랐어요.


 /그림=정서용

실성왕은 곧 "왜와 사이좋게 지내기 위한 수단"이라며 내물왕의 셋째 아들 미사흔을 왜에 볼모로 보냈어요. 얼마 안 가 왜와의 화친이 깨져 왜군이 신라 해안을 자주 침략해오자 이번에는 고구려와 손을 잡고 왜군을 물리친다는 이유로 내물왕의 둘째 아들 복호를 고구려에 볼모로 보냈죠. 마치 내물왕이 자기를 고구려에 볼모로 보낸 것을 앙갚음하듯 말이에요. 그뿐 아니라 눌지도 고구려군을 마중 나가게 한 다음 고구려인을 시켜 은밀히 죽이려했죠. 그러나 눌지의 인품과 기상을 좋게 본 고구려인이 실성왕의 음모를 눌지에게 알려주었고, 오히려 실성왕이 눌지와 고구려군에 붙잡혀 죽임을 당하지요. 눌지가 왕위에 올라 신라 제19대 왕이 됐어요.

◇박제상의 인질 구하기

"고구려에는 복호가, 왜에는 미사흔이 인질로 붙잡혀 있으니 하루빨리 구출해야 할 텐데…"

눌지왕이 볼모로 가 있는 두 동생을 구출하기 위해 고민하자, 신하들은 고구려와 왜의 왕실을 설득할 수 있는 인재로 박제상이라는 인물을 추천했어요.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일인데도 박제상은 왕의 명령을 충성스럽게 받들어 먼저 고구려로 향했죠. 당시 고구려 왕이었던 장수왕은 복호를 볼모로 데리고 있는 것이 고구려에 이익이 된다고 여겨 복호를 순순히 내주지 않았어요.

"이웃 나라와 사귀는 도리는 믿음과 성실함입니다. 만일 인질을 서로 주고받으며 관계를 이어나가려 한다면 믿음이 부족한 것이니 어찌 바람직한 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대왕께서 은혜를 베풀어 우리 왕자를 돌려보내 주신다면 대왕의 덕이 세상에 널리 알려질 뿐 아니라 우리 왕이 고구려를 더욱 가까운 사이로 여길 것입니다."

박제상의 논리와 진심 어린 말솜씨에 마음이 흔들린 장수왕은 복호를 신라에 돌려보냈어요. 고국에 돌아온 박제상은 그해 다시 왜로 건너가 미사흔을 구하려 했죠. 당시 왜는 고구려와 달리 신라와 사이가 좋지 않아 인질을 구하기 위한 작전을 펴야 했어요. 박제상은 자신이 신라를 배반하고 도망쳐 왔다고 속였어요. 그렇게 어렵사리 왜왕의 신임을 얻은 뒤 왜인들을 속이고 미사흔을 빼돌려 신라로 탈출하게 했죠. 미사흔이 무사히 배를 타고 신라로 가는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자신은 왜에 남았고요. 이 사실을 알고 크게 화가 난 왜왕은 박제상을 목도(木島)라는 섬에 보내 불태워 죽였어요. 소식을 전해 들은 눌지왕은 박제상에게 대아찬이라는 벼슬을 내리고 제상의 둘째 딸을 미사흔의 아내로 삼게 했다고 해요. 이는 '삼국사기' 열전에 전하는 이야기예요. '삼국유사'에는 약간 다른 기록이 있어요. 왜왕이 박제상에게 자신의 신하가 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고 하자 박제상은 "신라의 개, 돼지가 될지언정 왜의 신하는 될 수 없다"고 했답니다. 박제상은 볼모로 잡혀간 왕자를 구하려다 처참한 죽음을 맞았지만 신라의 충신을 대표하는 인물로 역사에 기록됐어요.


☞망부석 전설

남편이 돌아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다 죽어서 돌이 되었다는 망부석(望夫石) 전설은 경상도를 비롯해 여러 지방에서 전해지고 있어요. 대표적인 것이 신라 박제상의 아내에 관한 전설이죠. 박제상이 일본에 볼모로 있는 왕자를 구출하고 자신은 죽임을 당해 돌아올 수 없게 되자, 그의 아내는 치술령이라는 고갯마루에 올라가 높은 바위 위에서 멀리 왜국을 바라보며 슬프게 울었어요. 그녀는 남편을 그리워하다 그대로 돌이 되었고, 이후 사람들은 그 돌을 '망부석'이라 불렀다고 해요.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저술가 기획·구성=박승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