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문화유산 공동 발굴]
2007~2016년 북한과 7차례 공동 조사… 올해 다시 석달간 연구하기로 했어요
지난달 18일부터 20일까지 평양에서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지요. 우리나라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 공동선언 합의문에 서명했어요.
하루 앞서 문 대통령은 "과거 남북이 공동 조사한 개성 만월대(滿月臺)에서 세계 최초 금속활자의 세 번째 실물이 발견됐다"면서 "남과 북이 하나 되어 서로 협력하면 우리 민족의 훌륭한 역사를 되살려낼 수 있다"고 했어요. 남북이 함께 발굴한 만월대는 어떤 유적일까요? 북한에 있는 문화유산 중 남북 학자들이 공동으로 조사한 유적은 만월대 말고 어느 곳이 있을까요? 앞으로 남북은 어떤 유적을 발굴하게 될까요?
◇고려 왕조 숨결이 깃든 만월대
서기 877년 오늘날 개성 자리에 있는 송악산 남쪽 기슭에서 왕건이 태어났어요. 왕건은 삼국시대 말 강원·경기·황해 일대를 점령해 군사를 모으며 세력을 키운 궁예의 부하가 됐어요. 궁예는 901년 송악을 수도로 후고구려(태봉국)를 세우고, 스스로 왕이라 칭했어요. 904년엔 나라 이름을 마진으로 바꾸고 도읍을 철원으로 옮겼지요.
▲ /그림=정서용
그러나 궁예는 곧 난폭해져 백성들의 존경을 잃었어요. 918년 왕건이 궁예를 몰아내고 원래 수도였던 송악을 다시 한 번 도읍지로 삼아 고려를 세웠어요.
만월대는 왕건이 송악산 기슭에 지은 궁궐터예요. 왕의 궁전이 있던 궁성과 중앙 관청들이 있던 황성을 합친 곳이에요. 그중에서도 특히 궁성 부분만 따로 가리키기도 해요. 왕과 신하들이 아침마다 모이던 회경전(會慶殿)이 궁성의 중심이에요.
원래 궁 안에 달을 바라보기 좋은 건축물인 망월대(望月臺)가 있었는데, 조선시대로 건너오며 만월대라고 부르다가 후세 사람들이 고려 궁궐 전체를 만월대라고 일컫게 됐다고 해요. 그렇다면 만월대 말고 고려 사람들이 자기네 궁궐을 부르던 정식 이름은 무엇일까요?
조선 왕조는 궁궐에 '경복궁' '창덕궁' 같은 정식 이름을 붙였어요. 하지만 고려에선 그저 '정궁'이나 '본궐'이라고만 부른 것 같아요. '회경전'처럼 개별 건물을 가리키는 이름은 있었지만 궁궐 전체를 가리키는 이름은 없었던 거죠.
고려 궁궐은 1361년 공민왕 때 홍건적이 침입해 그만 불타버리고 말았어요. 지금은 만월대라는 이름과 터, 계단만이 남아 있지요. 폐허처럼 남아 있던 만월대 유적을 우리나라와 북한 학자들이 2007년부터 2016년까지 일곱 차례에 걸쳐 공동으로 조사했어요. 건물터 40여 동과 축대 2곳, 대형 계단 2곳, 금속활자 1점을 포함해 유물 1만6500여 점을 발굴했지요. 남북 관계자들은 그동안 중단된 조사와 보존 사업을 석 달간 다시 하기로 합의했어요.
◇남북이 함께 찾은 발해 유적
우리나라와 북한 학자가 공동으로 우리 역사를 연구한 사례가 또 있을까요? 만월대처럼 정부 차원에서 이뤄진 합동 조사는 아니지만 전에도 신라 법흥왕 때 금강산에 지은 사찰 신계사(神溪寺)를 남북이 공동으로 복원한 일이 있어요. 북한 국보 문화유물 제95호이기도 하죠.
신계사는 6·25전쟁 때 건물이 모두 불타 없어지고 삼층석탑만 남아 있었는데, 2004~2007년까지 남북이 힘을 합쳐 대웅전을 비롯한 여러 건물을 함께 복원했어요. 2015년까지 매년 공동 법회도 열었고요.
그보다 앞서 남북 역사학자와 고고학자들이 러시아 연해주에서 만나 분단 후 처음으로 발해 유적을 공동 발굴한 적도 있어요. 러시아 연구소 초청으로 남북한 발굴단이 동참하는 방식이었지요. 조선일보와 대륙연구소, 문화방송 발해 유적 발굴조사단이 1993년 5월 27일 러시아 연해주 코르사코프카 발해 사원에 갔어요.
발해 유적은 중국·북한·러시아에 퍼져 있는데 건축물은 대부분 없어지고 건물터, 무덤, 성곽 등만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아요. 코르사코프카에서 발굴단은 봉황과 연꽃 문양이 새겨진 발해 수막새 기와를 찾아냈어요. 기와에 새겨진 연꽃무늬는 고구려 양식에서 온 것으로 보여요. 발해가 고구려를 이어받았다는 뜻이죠.
◇비무장 지대 유적, 공동 조사 이뤄질까요?
이번에 남북한이 교환한 합의서에는 '비무장 지대 내 역사 유적 공동 조사와 발굴'이라는 항목도 있어요. 앞으로 어떤 문화유산을 남북이 공동으로 발굴할 수 있을까요?
태봉국 철원성이 첫손에 꼽힙니다.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가 904년 도읍을 철원으로 옮긴 후 지은 대규모 도성이에요. '궁예도성'이라고도 불러요. 왕건이 궁예를 몰아낸 918년까지 14년 동안 후고구려의 수도였어요.
태봉국 도성은 아주 커요. 외성 둘레 12.5㎞, 내성 둘레 7.7㎞, 궁성 둘레 1.8㎞지요. 고려 때 김부식이 쓴 역사서 '삼국사기'에 "905년 국토는 황폐해졌는데 새 도읍에 지극히 사치스러운 궁궐을 지어 백성들의 원망을 샀다"는 기록이 나와요. 궁예가 도성을 얼마나 화려하게 지었는지 짐작이 가지요?
그동안 태봉국 도성은 남북 군사분계선이 한가운데를 가르고 있어 발굴 작업이 이뤄지지 못했어요. 1917년 조선총독부가 만든 지도와 1951년 미군이 촬영한 항공사진을 보고 도성 규모와 위치를 파악한 정도예요. 남북 공동 조사가 실현되면 우리는 궁예의 궁궐에 대해 더 많은 걸 알게 될 거예요.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저술가 기획·구성=유소연 기자
'뉴스 속의 한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뉴스 속의 한국사] 고종 恨 서린 1.1㎞ 산책로, 이달부터 한 바퀴 돌 수 있죠 (0) | 2021.11.09 |
---|---|
[뉴스 속의 한국사] 세종대왕이 한글 만들 때 누가 도왔을까요? (0) | 2021.11.09 |
[뉴스 속의 한국사] 조선 한양 북촌엔 실세 양반, 남촌엔 가난한 선비 살았죠 (0) | 2021.11.09 |
[뉴스 속의 한국사] 신라 이사부가 우산국 정벌… 日 영유권 없다는 문건 있죠 (0) | 2021.11.09 |
[뉴스 속의 한국사] 호조에서 戶口 조사… 3년마다 가족 수·집 형태 파악했죠 (0) | 2021.1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