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권력이 금력 압도하는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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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8월 46세 시진핑이 중국 남부 푸젠성 성장 대리로 승진했다. 44세였던 리커창 허난성장(현 총리)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 젊은 성장이었다. 하지만 축하만 받기에는 바다 건너 대만 상황이 급박했다.
리덩후이 대만 총통은 그해 7월 “중국과 대만 관계는 국가 대 국가로 봐야 한다”는 양국론(兩國論)을 발표했다. 전쟁 이야기까지 불거지면서 푸젠에 투자한 대만 기업인들이 불안에 떨었다. 대만 기업은 당시 106억달러를 투자해 푸젠의 ‘돈줄’ 역할을 하고 있었다.
시진핑은 승진 이틀 만에 대만 기업가 10여 명을 불러 좌담회를 열었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시진핑은 리덩후이의 양국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대만 기업인들을 안심시켰다. “양안 관계에서 어떤 상황이 발생해도 푸젠성 정부는 법에 따라 확실하게 대만 기업의 모든 정당한 이익을 보호할 것입니다.” 그는 이틀 후 또다시 대만 투자 기업을 방문해 “정치로 인해 경제협력이 어긋나거나 방해받지 않도록 한다”며 대만 기업들의 권익 보호를 재확인했다.
22년 후 국가주석 시진핑이 이끄는 중국은 완전히 달라졌다. 정치와 경제의 구별이 모호하다. 지난 22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상하이 등 5개 지방정부가 대만 위안둥(遠東)그룹이 투자한 중국 기업들에 대해 조사를 벌여 벌금을 부과했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저녁 중국 국무원 대만판공실 대변인은 “(대만 독립 세력과 관련된) 기업, 자금 후원자는 반드시 법에 따라 처벌받아야 한다”며 “밥만 먹고 솥을 깨는 행동(吃飯砸鍋)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위안둥그룹의 ‘혐의’는 명확지 않다. 쑤전창 대만 행정원장(총리 격)이 2018년 신베이(新北)시장 선거에 나갔을 때 200만대만달러(약 8560만원)를 후원한 일, 2020년 총통·의회 선거 때 민진당과 국민당 후보에게 6000만대만달러(약 25억7000만원)를 후원한 일이 이유로 거론된다. 시 주석이 중국 공산당 100년사에서 자신의 업적으로 “대만 독립 세력을 단호히 억제했다”고 써넣은 상황에서 중국 당국이 살계하후(殺鶏嚇猴·닭을 죽여 원숭이를 놀라게 하는 것) 효과를 노린 것은 분명해 보인다. 수십 년간 중국과 거래해 온 대만 기업인 사이에서도 ‘중국 정치’를 다시 배워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한다.
시진핑 치세는 권력이 금력(金力)을 압도한다. 정경 분리는 설 자리가 없다. 주권·안전·발전 이익에 저해된다고 보는 순간 경제적 손해를 감수하고 철퇴를 날린다. 미·중 쟁탈전 속에 중국이 ‘발전 이익’을 앞세워 미국에 협조적인 한국 기업에 불이익을 줄 수도 있다. 우리는 이런 불확실성에 대비하고 있나. 일이 터지고 난 후 현지 공관을 닦달하고 특사를 보내 해결한다는 식의 접근은 요소수 사태로 끝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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