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인의 땅의 雜事] 1. 폭군 연산군과 네 번 죽은 여자 어리니
술자리에서 남들 다 아는데 혼자 모르는 낭패감 혹은 혼자만 아는 사실을 떠벌리며 대화를 주도하는 통쾌함. 낭패를 막고 쾌감을 얻는, 알면 재미있고 몰라도 행복한 ‘박종인의 땅의 잡사’.
<1>연산군과 네 번 죽은 여자 어리니
악마가 권력을 가지게 되면
삼척동자도 다 아는 폭군 연산군은 참으로 폭군이었다. 혹자는 자기 어머니가 불행하게 죽어서 그 트라우마가 폭력성으로 변했다고 측은해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그냥, 연산군은 폭군이다. 송아지가 어미소와 있는 모습을 보고 아버지 성종에게 “나는 어미가 없다네”하고 푸념했다는 둥 동정 어린 언급이 나오는데, 어림없다.
이미 왕이 되고 석 달 만인 1495년 3월 16일 연산군은 승정원에 이렇게 묻는다. “성종 임금 묘지문에 있는 윤기견(尹起畎)이라는 자는 어떤 사람이냐?” 승정원이 이리 답한다. “폐비 윤씨 아버지인데, 윤씨가 왕비로 책봉되기 전에 죽었습니다.”
윤기견은 연산군 엄마인 폐비 윤씨 아버지다. 그러니까 연산군 외할아버지다. 아버지 성종은 연산군이 어릴 때부터 주변에게 “절대 윤씨에 대해 얘기 말라”고 엄명을 내렸던 터였다. 자기 탄생의 비밀을 알지 못했던 연산군이 이제 외할아버지와 엄마를 깨달아버렸다. 연산군은 즉각 승정원에 보관된 윤씨 폐비 과정과 장례 관련 서류를 열람한 뒤 이에 대해 “다시 묻지 않았다.”(1495년 4월 11일 “연산군일기”)
연산군은 등극 10년 그러니까 어머니 윤씨 죽음을 알게 된 지 9년 만에야 막장 폭군으로 정체를 드러낸다. 폐비 윤씨 사건이 폭정을 가져온 직접적인 이유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가 보인 숱한 막장 사태 가운데 윤씨 관련 사건은 극히 일부다. 윤씨를 폐비시키고, 민가로 돌아간 윤씨에게 사약을 내리기까지 과정에 개입돼 있는 사람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조리 죽인다.
권력 대 권력의 투쟁이라면 정적들이 서로를 폭군이라 부르며 목숨 건 싸움을 벌이며 권력 위치를 바꾸면 그만이다. 그런데 연산군은 권력 시스템에 있는 사람만 아니라 눈밖에 난 모든 백성을 다 죽였다. 권력을 가진 인간이 악마성까지 갖추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제대로 알려준 사람이 이 연산군이다. 그 과정에서 어이없이 세 번이나 죽은 여자가 있는데, 이름은 어리니였다.
“삐뚤어질 테다”
연산군은 “위를 업신여기는 풍습(陵上之風, 능상지풍)을 고쳐 없애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조선이 어떤 나라인가. 전주 이씨 왕이 마음대로 정치를 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다. 세 정승을 비롯해 지방 유생들까지 상소를 올려 왕을 비난하고 정치를 견제하던 나라였다. 연산군은 그 시스템을 견디지 못했다. 그는 자기 권력에 거스르는 일체의 말과 행동을 ‘능상지풍’이라 규정하며 자기 마음대로 살았던 지도자였다.
예컨대 이런 일. 사간원 관리 이충걸과 김승조가 “오랫동안 경연(經筵:신하들과 경전을 읽는 공부)을 하지 않았으니 옳지 못하다”고 연산군에게 조언했다. 연산군은 이렇게 답했다. “어진 신하들이 조정에 가득하니 내가 어질지 못하다고 하는 게지. 이래서 위를 능멸하는 풍습이 있는 것이다. 어질지 못한 내가 임금 자리나 채우고 있을 뿐인데 어진 신하들과 뻔뻔스럽게 경연을 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 않겠다.”(1504년 4월 23일 ‘연산군일기’) 자기는 태생이 어질지 못한 놈이니 어진 당신들이 정치 한번 잘 해보나 눈을 부릅뜨고 보고 있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함부로 업신여기지 말라는 말이니, 요즘 말로는 이런 뜻이다. “삐뚤어질 테다.”
네 번 죽은 여자, 어리니
폐비에 얽힌 사람들은 끔찍한 형벌을 받았다. 경국대전에 규정된 각종 형벌 외에 연산군 대 형벌에는 손바닥 뚫기(穿掌, 천장), 불로 지지기(烙訊, 낙신), 가슴 빠개기(斮胸, 착흉), 뼈바르기(剮骨, 과골), 마디마디 자르기(寸斬, 촌참), 배 가르기(刳腹, 고복) 등이 실록에 기록돼 있다. 이 가운데 죽은 자를 또 죽이는 ‘뼈를 갈아 바람에 날리기(碎骨飄風, 쇄골표풍)’ 형은 창의성에서는 으뜸이다. 아버지 성종의 유모였던 봉보부인 백씨는 바로 이 쇄골표풍형으로 세 번이나 죽었다.
백씨 이름은 어리니(於里尼)다. 성종 유모로 궁궐에 들어왔다가 1479년 왕비 윤씨가 벌이는 질투 행각을 성종에게 일러바쳤던 여자다. “삐뚤어지겠다”고 선언한 1504년 4월 23일, 연산군은 이렇게 명했다. “모의에 참여한 어리니를 부관참시하라.” 부관참시는 관을 부수고 시체를 목부터 잘근잘근 토막내는 형벌이다. 이미 1490년 죽어 땅에 묻혀 있던 어리니는 관에서 끌려나와 목이 달아났다. 아직 살아 있던 남편 강선은 곤장 100대를 맞고 유배형을 받고 재산은 다 몰수당했다.
끝난 게 아니었다. 5월 1일 승정원에서 곤혹스러운 보고가 올라왔다. “폐비 사건에 연루된 김제신(金悌臣)만 관에서 꺼내 목을 매달라고 명하셨는데, 승정원이 잘못해서 한명회(韓明澮), 정창손(鄭昌孫), 심회(沈澮), 두대(豆大)와 어리니(於里尼)도 효수하라고 결재가 나버렸나이다.” 연산군은 시원하게 답했다. “함께 목을 매달아라.”(1504년 5월 1일 ‘연산군일기’)
어리니는 늙어서 한 번 죽고, 부관참시로 또 한 번 죽고, 잘못된 명단 작성으로 또 한 번 죽었다. 한명회를 위시한 다른 옛 권력자 혼백들도 억울했겠지만, 어리니는 너무 불쌍했다. 석 달 뒤인 8월 19일 연산군은 어리니 남편 강선을 곤장 100대 형에서 능지처사 형으로 올려버리고 아들은 목을 베라고 명했다. 능지처사(陵遲處死)는 ‘살갗을 천천히 도려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잔인하기 짝이 없는 형벌이다.(조선왕조가 집행한 마지막 능지처사형 죄인은 갑신정변 주역 김옥균이었다. 이 또한 다음에 이야기할 기회가... 하지만 너무도 끔찍하여...ㅠㅠ)
그런데 또 끝이 아니었다. 이듬해 1월 26일 연산군은 이렇게 또 명했다. “어리니(於里尼), 홍식, 강형, 엄산수, 정인석, 정진, 정옥경, 윤채, 조지서(趙之瑞), 이파, 두대(豆大), 송흠, 한치형, 이극균, 이세좌, 이총, 윤필상, 김순손, 이덕숭의 뼈를 부순 가루를 강 건너에 날리라.”
조지서(趙之瑞)는 세자 시절 연산군을 엄하게 꾸짖던 스승이었고 두대(豆大)는 어리니와 함께 그 전 해 5월 명단에 잘못 올라갔음에도 그냥 부관참시 당한 사람이었다. 죽고 또 죽어서 영혼이 남아 있는지조차 불분명한 이들이, 연산군이 혓바닥 한 번 놀리면서 또 형벌을 받았다. 영혼조차 없어지고 형체도 찾을 수 없는 한 여자는 시신을 가루로 만들어 바람에 날려버렸으니, 권력과 악마성이 결합했을 때에만 벌어질 수 있는 막장 참극이었다.
그해 가을 어리니 남편 강선의 여종 종가(從加)가 강선에게는 허물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연산군은 종가를 죽이고 그 시체를 자르고 쪼개라고 명했다. 실록은 “‘시체를 자르고 쪼개는 형벌(刳剔其屍, 고척기시)’은 이때 비롯됐다”고 기록했다. 그 뒤는 이렇게 이어진다. “사람을 형벌할 때 교살(絞殺)한 뒤 또 목을 베고, 그러고도 부족하여 사지를 찢으며 찢고도 부족하여 마디마디 자르고, 배를 가르는 형을 썼다.”(1505년 10월 3일 ‘연산군일기’)
악마의 조력자, 간신들
그런데, 혼자 했겠는가. 힘센 나쁜 놈 주변에는 언제나 똑같이 나쁜 간신 모리배들이 있다. 어리니가 목이 잘려 거리에 매달리고 석 달이 흘렀다. 8월 16일 의금부가 이렇게 보고했다. “어리니의 동성삼촌까지 고문을 하며 조사했는데, 동성 6촌과 이성 4촌까지 아울러 국문하면 어떻겠나이까?” 폭군은 그리하라고 명했다.(1504년 8월 16일 ‘연산군일기’)
이미 죽은 어리니를 관에서 꺼내라고 악마가 명하던 1504년 4월 23일 그날, 정승들이 악마에게 이렇게 답했다. “성상의 하교가 지당하십니다.” ‘모든 일을 먼저 정한 뒤에 회의에 넘기니 재상들은 다시 이의가 없고 모두 하교가 지당하다고만 했다.’(1504년 4월 23일 ‘연산군일기’) 악마는 홀로 막장이 아니다. 간신 덕에 악마는 외롭지 않다. 악마와 그를 추종한 간신들과 슬픈 여자 어리니 이야기 끝.
(영상은 유튜브 ‘박종인의 땅의 역사'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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