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인의 땅의 歷史

“여행에세이, 닷새 만에 10쇄 2만 권 찍었습니다”

bindol 2021. 12. 4. 15:11

‘설레는 건 많을수록 좋아’ 펴낸 직업여행가 김옥선·김수인씨
출간 일주일 만에 2만권 팔려

입력 2021.04.03 03:46
 
 
 
 
 

더티(Dirty)와 그래쓰(Grass). 김옥선(26)과 김수인(27)은 그렇게 불린다. 두 사람은 ‘직업여행가’다. 여행이 직업이다. 여행으로 돈을 번다. 기업 협찬으로 유튜브 영상에 PPL(제품 협찬)을 노출해 여행경비는 물론 수익까지 올리는 여행가들이다.

직업여행가 더티(Dirty) 김옥선(왼쪽)씨와 그래쓰(Grass) 김수인씨. 작가인 김옥선씨가 지난주 출간한 여행에세이 ‘설레는 건 많을수록 좋아’는 인터넷서점 배포 2분 만에 초판 4000권이 매진됐다. 책에는 여행을 통해 얻은 20대 여자들의 아픈 삶과 미래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다. /박종인

지난달 25일 이들의 여행기를 담은 책 ‘설레는 건 많을수록 좋아’(상상출판)이 출간됐다. 당일 ‘사고’가 터졌다. 오후 2시 인터넷서점에 깔리고 ‘2분’ 만에 초판 4000권이 품절된 것이다. 4월 1일 현재 10쇄에 2만권이 서점가에 풀려나갔다. 온라인 배포 첫날 각 인터넷 서점 종합 1위에 올랐던 ‘설레는…’은 4월 1일 현재 인터넷교보, 예스24, 알라딘 등 인터넷서점 종합1위다.

두 사람은 2016년 처음 서울 영등포에 있는 한 헬스장에서 만났다. “헬스장에서 경품을 내걸고 다이어트 대회를 열었다. 내 경쟁은 더티밖에 없었다.”(그래쓰 수인씨) “어느 날 그래쓰가 나한테 태국산 코코넛 과자를 주더라. 엄청 맛있었다. 나중에 보니 다이어트 포기하게 만들려고 한 거였다.”(더티 옥선씨) 알고 보니 둘 다 아르바이트 여러 개씩 하면서 여행경비를 모으고 있었다. 다이어트는 물 건너갔다. 둘은 친구가 됐다. 헬스장 관장도 이들에게 넘어가 맛집 동지가 됐다(그 관장님은 지금 옷가게 사장이 됐다).

한 콜센터에 같이 취직해 일하다가 마구 스트레스가 쌓였을 때, 그래쓰 수인씨가 멜버른행 항공티켓을 내밀었다. “같이 가자. 너는 누가 가자고 안 하면 끝까지 앉아 있으니까 그냥 사왔다.” 그래서 직장 때려치우고 가방에 핸드폰과 지갑 넣고 떠났다. 마침 졸업작품 준비하던 PD 지망생이 여행 촬영해주겠다며 동행했다. 그가 찍어준 영상들을 편집해 페이스북에 올렸다.

대박이 터졌다. ‘직장 때려치우고 무작정 떠난’ 욜로(YOLO: 인생은 한번 뿐) 트렌드에 딱 맞는 컨텐츠였다. 영상을 구매하겠다는 회사들이 마구 나타났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태국에 가서 또 영상을 찍어 올렸다. 이번에는 망했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영상미도 훌륭하고 스토리도 좋았는데. 빗속에 청계천에 발 담그고 햄버거 하나 나눠먹으며 엄청 싸웠다. 지금도 청계천을 보면 가슴이 아릿하다. 지하철 막차 타려고 알아서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면서 싸웠다. 1년만 고생해보고 안되면 관두자고 작심했다.”

1년 만에 영국계 화장품회사 러시(LUSH) 공모전에서 대상을 탔다. 상품은 계약직 인턴 입사. 회사에서는 관행에 따라 자기네 상품명으로 별명을 붙여줬다. ‘더티와 그래쓰’가 탄생했다.

 

대기업 협찬이 이어졌다. 이후 두 사람은 직업을 여행가로 바꿨다. 시베리아 횡단열차(2017년 1월)가 시작이었고 코로나 유행 직전 인도 바라나시(2020년 2월)이 마지막이었다. 횡단열차에서 주정뱅이에게 행패를 당할 때, 제대 후 귀향 중이던 열아홉 살짜리 군인 데니스가 그 주정뱅이를 물리쳐줬다. 그래서 이후 위험한 곳은 남자 스태프와 동행하고, 안전한 곳은 둘이서 다니며 돈을 벌었다. 파리에서 만난 스위스 사람 피르만은 나중에 스위스에서 재회했다. 더티와 그래쓰는 피르만에게 ‘필승’이라고 이름을 붙여줬다. 책에는 이런 인연 이야기가 가득하다.

이들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청춘여락’에는 동영상 299건이 올라와 있다. 작년 2월 17일 올린 ‘여행 준비 다이어트’는 조회수 359만 회, 2018년 7월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267만회, ‘인도 열차 여행’(2019)은 220만회를 기록했다. 친구를 미국 가자고 꼬드겨 중국 옌볜으로 끌고간 몰래카메라는 186만회를 기록했다. 구독자 수는 58만 명이다.

그런데 지난해 코로나 바이러스가 지구를 덮치면서 수입이 딱 끊겼다. 그래서 더티 옥선씨가 책을 썼다. “유튜브 구독자들한테 언젠가 책을 낸다고 소문을 냈는데, 나오자마자 다 사주셨다.”(더티&그래쓰) 여행이 불가능한 이 시대, 여행을 대리 경험하겠다는 욕구가 맞아 떨어졌다.

두 사람의 영상과 책에는 여행정보는 없다. 장소 대신 사람들이 나온다. 아름다운 인연과 함께 더럽고 치사하고 변태들이 난무하는 잡상이 나온다. 때로는 공포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20대 청춘이 보는 그대로 묘사돼 있다. 그래서 ‘설레는…’은 구매 독자 62.5%가 20대 여성(‘알라딘’ 통계)으로 압도적이다. 책에는 20대 여자들이 겪은 아프고 쓰린 경험이 20대 여자들이 쓰는 문법과 시각으로 기록돼 있다. ‘평범한 순간에 숨어 있는 수많은 아름다움(파리)’과 ‘다시 만날 의례로서의 죽음’(인도 바라나시)을 이들은 여행에서 배웠다. 가본 적 없는 독자들은 이들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받고.

그 사이에 더티 옥선씨는 작가가 됐다. 그래쓰 수인씨는 가수로 데뷔했다. 여행하며 알아차린 재능이다. 옥선씨가 말했다. “유투버라고 하면 어른들 표정이 다 이상했다. 그게 속이 상했는데 작가고 가수라고 하면 수긍을 한다. 할 수 없지 뭐.” 목표? “포르투갈에 가서 에그타르트 만드는 법을 배울 거다. 그걸로 한국에 가게를 차려야지. 주방은 더티가 맡고 인테리어와 포장은 그래쓰가 맡고.” 인생, 여행 아닌가.

더티 김옥선씨가 쓴 여행에세이 '설레는 건 많을수록 좋아'(상상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