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 세상을 말하다] 黃臺瓜辭<황대과사>
한자세상 8/31
중국의 유일한 여자 황제 무측천(武則天)은 당(唐) 태종의 후궁이었다. 3대 황제 고종과는 태종의 1주기 제사 즈음 감업사(感業寺)에서 비구니로 만났다. 황실에선 고종을 놓고 황후 왕(王)씨와 숙비 소(蕭)씨의 다툼이 격렬했다. 고종에 이끌려 환궁한 무측천은 왕황후와 손잡고 소숙비를 몰아냈다. 이후 무측천은 고종과 4남 2녀를 낳았다.
무측천은 잔인했다. 왕황후 공격에 친딸을 희생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왕황후가 애지중지하던 자신의 딸을 직접 목 졸라 죽인 뒤 황후에게 덮어씌웠다. 황후의 폐위를 놓고 조정이 갈라졌다. 원로들이 선대의 후궁 출신을 황후로 옹립할 수 없다며 반대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입궁 4년 만에 무측천은 황후에 올랐다.
마침 고종이 풍을 앓았다. 나랏일에 흥미를 잃었다. 무측천의 시대가 열렸다. 야심은 멈추지 않았다. 미래 권력인 태자 이충(李忠)을 폐했다. 친아들 이홍(李弘)을 앉혔다. 이홍은 유폐된 소숙비의 딸을 풀어 달라고 청했다. 무측천은 독살로 화답했다. 둘째 이현(李賢)을 장회태자(章懷太子)에 봉했다. 이현의 유능함을 본 고종은 인재를 붙여 힘을 보탰다. 무측천은 두려웠다.
밀정을 보내 태자 집무실에서 수백 개의 갑옷과 투구를 찾았다고 주장했다. 반란을 모의했다며 대의멸친(大義滅親)을 외쳤다. 고종이 반대했다. 연금에 그쳤다. 이듬해 파주(巴州)로 귀향 보냈다. 무측천은 다시 심복을 보내 자살을 강제했다. 죽음을 직감한 이현은 고종과 무측천에게 시를 지어 보냈다.
“황대 언덕 아래 오이를 심으니, 주렁주렁 열매가 익어 가네/ 처음에는 오이가 좋다며 따고, 두 번째는 아직도 드물다 솎아내고/ 세 번째는 맛이 좋다며 따내고, 네 번째는 덩굴 채로 걷어 가네.(種瓜黃臺下 瓜熟子離離/一摘使瓜好 再摘令瓜稀/三摘尙自可 摘絶抱蔓歸)”
골육상쟁의 권력 다툼을 언덕의 오이에 빗댄 시 ‘황대과사(黃臺瓜辭)’다. 황위 경쟁에 패한 삼국지 조조(曺操)의 아들 조식(曺植)의 ‘칠보시(七步詩)’와 함께 잔혹한 권력 세계를 노래한 시로 유명하다.
홍콩의 거부 리카싱(李嘉誠)의 “황대의 오이를 어찌 다시 따려하나(黃臺之瓜 何堪再摘·황대지과 하감재적)” 여덟 자 전면 광고가 화제다. 1928년생 리카싱의 페이스북은 아포리즘의 보고다. 홍콩의 무측천은 과연 누구인가. 전 세계가 장회태자의 앞날을 주목하는 요즘이다.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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