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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22] 통계 열풍으로 시작된 日 근대화

bindol 2018. 9. 7.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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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8일은 일본 정부가 지정한 '통계의 날'이다. 이날엔 1870년 일본 최초의 근대적 통계로 일컬어지는 '부현물산표(府縣物産表)에 관한 포고'가 발표됐다. 당시 조사에서 일본의 생산이 농산물 61%, 공산물 30%, 원자재 9%로 구성되어 있음이 파악됐다. 일목요연한 수치를 눈앞에 둔 근대화 설계자들은 농업 국가 일본의 공업 국가 전환에 국가의 명운이 달려 있음을 명확히 인식했다.

그때까지는 용어가 혼란스러웠다. 나라 형세를 정리한 표라는 의미에서 정표(政表), 표기(表紀) 등을 혼용했고, 'statistics'를 번역한 말도 국세학(國勢學), 국무학(國務學), 지국학(知國學) 등 학자마다 제각각이었다. 1871년 대장성에 통계사(統計司)가 설치되면서 통계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이토 히로부미가 미국 시찰 후 국정에서 통계의 중요성을 깨닫고 제안한 부서이다.

용어 확립에 크게 기여한 사람은 미쓰쿠리 린쇼(箕作麟祥·1847~1897)다. 그는 프랑스 법전을 번역하고, 헌법·권리·의무·동산·부동산 등 많은 일본식 법률 용어를 만들어 '법률의 원조'라 한다. 근대국가 통치의 지적 토대가 법률과 통계임을 꿰뚫어 본 그는 1874년 프랑스의 'Eléments de statistique'를 번역하며 '통계학'이라는 용어를 쓴다. 이 책자 보급으로 통계라는 용어가 정착되었다.

일본의 근대화는 통계 열풍과 함께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후쿠자와 유키치를 비롯해 니시 아마네(西周), 쓰다 마미치(津田眞道), 스기 코지(杉亨二) 등 당대의 계몽 지식인들이 근대 과학성의 표상이자 합리적 국정의 기초로 통 계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들의 통찰과 노력에도 1920년에야 일본 최초의 총인구조사(국가 센서스)가 시행된다. 높은 정확성의 유의미한 통계를 위해 오랜 노하우 축적, 인프라 구축, 사회 인식 제고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듯 통계의 신뢰도도 하루아침에 높아지지 않는다. 통계의 수준이 곧 국격(國格)이라는 말을 되새기는 요즘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9/06/201809060379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