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column

[최상연의 시시각각] 닥치고 소득주도

bindol 2018. 9. 7. 08:28


진단이 정확해야 해법이 나오는데
코드 통계론 끝없는 논쟁만 부른다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집에서 새는 바가지 들에 가도 샌다’는 속담은 절반만 맞는 말이다. 밖에선 담배 꽁초를 길에 던지고 모래 속에 파묻는 ‘새는 바가지’가 많다. 그 탓에 모래를 파헤쳐 꽁초를 찾아내는 비치클리너(Beach Cleaner, 해변 청소기)가 백사장마다 비치돼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자기 집 장판 속에 꽁초를 숨기는 어른은 없다. ‘공유지의 비극’이다.
 
해결책으로 사유화를 거론하는 사람이 많다. 아프리카에서 코끼리가 멸종 위기에 이르자 케냐 정부는 코끼리 사냥을 금지했다. 그래도 코끼리 숫자는 줄어들기만 했다. 짐바브웨는 코끼리를 사유 재산으로 인정했다. 그러자 코끼리 수가 크게 늘어 매년 사냥 쿼터를 배정할 수도 있게 됐다는 것이다.
 
문제는 물 같은 공유 자원은 사유화를 위한 분리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말라가는 캘리포니아에선 필요한 물을 지하수로 보충한다. 수많은 지하수 개발업자가 저마다 최대한의 지하수를 퍼 올려 고갈 위기를 맞았다. 정부 역할은? 지금 이대로 가면 모두에게 막대한 손실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리고 개발업자들이 스스로의 규율을 만들도록 도왔다.
 
가장 중요한 건 정확한 조사와 통계다. 그래야 당사자들이 상황을 파악하고 위기를 느껴 해결책이 나온다. 사회 현상이 숫자로 표현되는 순간 숫자는 현실을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 그런 뒤 정부는 공유 자원이 지켜질 수 있는 규칙을 만들도록 유도하고 규칙을 보호하는 게 최선이란다. 2009년 노벨상을 수상한 엘리너 오스트럼의 연구 결과다.
 
우린 거꾸로다. 숫자는 다툼을 끝낼 근거가 아니라 지루한 공방의 출발점이다. 원전이든, 최저임금이든, 소득주도 성장이든 거의 모든 통계가 그렇다. 얼마나 위험한지, 국민 지지가 얼마인지는 정확한 숫자로 표현될 수 있지만 한국 정치에선 ‘코드 통계’ 논란의 시작이다. 대통령이 거론한 숫자도 정권 입맛에 맞게 비튼 ‘청와대 편집 통계’란 시비에 휘말렸다.
 
소득통계 논란 속에 통계청장이 쫓겨나더니 이번엔 정치판이 정책 여론조사로 한판 붙었다. ‘소득주도 성장은 가계 지출 경감, 영세 상공인 지원, 사회 안전망 확충을 통해 소득을 높이고 성장을 추진하는 건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가 설문 내용이었다. 55.9%가 찬성 답변이었다. 문항 자체가 여론 조작이란 공격과 공정 조사란 반격이 맞부닥쳤다.
 
이런 상황에서 실질 국민총소득은 줄고 성장은 더 꺾였다는 불편한 통계가 또 나왔다. 이번엔 한국은행발이어서 한은 총재가 경질되느냐는 농담도 함께였다. ‘경기가 회복세’란 정부는 머쓱해졌는데 중요한 건 변함없는 청와대다. 장하성 정책실장은 ‘소비가 굉장히 견조하고 좋다. 침체 아니다’고 강변했다. 뒤져보니 민간 소비가 0.3% 늘어 6분기 만의 최저였다. 딴 나라 얘기 같다.  
     
걱정스러운 건 왜곡된 통계나 잘못된 자료 해석에 근거해 밀어붙이는 정책이 초래할 결과다. 이 정부 출범 후 경제 운용은 선진국에서 입증된 성공 방식과 반대로 갔다. 그때마다 ‘맞춤형 통계’를 들이댔다. 소득과 부에 관한 더 많은 원 데이터를 공개하면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진지한 토론이 일어날 거다. 그게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길이라는 게 오스트럼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이유다.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어제 “통계가 설명하지 못하는 일반 국민의 어려움이 크다”는 글을 올렸다. 맞는 말이다. 통계 수치 때문에 자영업자들이 빗속 광장에 모여 드는 건 아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정확한 통계다. 반기업으로 맞춰진 정부 정책을 돌리지 않는다면 ‘통계가 설명하지 못하는 어려움’은 아마도 계속 쏟아질 거다. 통계는 정치가 아니다. 현실을 바꿔야 숫자가 바뀐다. 
 
최상연 논설위원 


[출처: 중앙일보] [최상연의 시시각각] 닥치고 소득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