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column

[아탈리 칼럼] 일어날 일은 기어이 일어나고야 만다

bindol 2018. 9. 7. 08:33


이탈리아 모란디 교량 붕괴 참사
세계 곳곳에 퍼진 사회적 병리 탓
국가 자산·유산 관리하지 못하면
다음 세대의 번영과 안전이 위험

자크 아탈리 아탈리 에 아소시에 대표 플래닛 파이낸스 회장

자크 아탈리 아탈리 에 아소시에 대표 플래닛 파이낸스 회장


지난달 14일 이탈리아 제노바의 모란디 교량 붕괴로 최소 49명이 희생됐다. 그곳에는 강풍을 동반한 폭우가 쏟아졌다. 믿기 어려운 이 비극은 불행하게도 어쩌다 한 번 벌어진 참극이 아니다. 모란디 다리 붕괴는 이탈리아 바깥에서 벌어진 다른 사고와 유사한 점이 있다. 특히 아직도 그 상처가 아물지 않은, 2014년 한국의 세월호 침몰 비극과 비슷하다. 모란디 다리 붕괴로 인한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탈리아를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도 다음 10개 항목을 생각해 봐야 한다.
 
1. 사고 다리는 오래전에 보수 절차를 밟았어야 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교량 구조 부실을 비롯한 설계 결함이 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표면 보수가 시행됐을 뿐 교량 구조 차원의 변화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경고를 무시한 책임이 있는 자들은 엄하게 처벌받아야 할 것이다.
 
2. 다리는 심각한 위험 상태로 방치돼 있었다. 언젠가는 문제들이 저절로 알아서 해결될 거라고 믿었던 탓이다. 특히 다리가 처해 있는 위험에 대해 진작부터 경고했다고 투덜대는 이들 역시 더 강력하게 위기 상황을 역설하지 않고 기술적·사회적·경제적 내지는 정치적인 해결 여건을 조성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유죄다.
 
3. 예외 없이 도처에서 모두가 만연한 질병을 앓고 있는 셈이었다. 다들 교량의 안전성보다 그 다리를 이용하는 차량과 다리 보수 공사가 초래할지도 모를 이용객들의 불만에 더 집중했다. 모란디 다리는 교량의 내구성이 전 지역의 경제적·사회적 생존을 담보하는 것이었는데도 그러했다. 제노바 경제는 최소 수 개월간은 급락 상황을 겪게 될 것이다.
 
4. 이번 사고는 긴축재정 탓도 아니요, 유럽이 얽힌 문제도 아니다. 가장 큰 책임은 잘못된 사용처로 흘러간 국채에 있다. 국채는 당장의 복지를 위해 당겨 쓸 목적이 아닌, 공공시설 건설과 유지 보수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용도로 활용됐어야 했다.
 
아탈리 칼럼 9/7

아탈리 칼럼 9/7


5. 많은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손에 들고 있는 것보다는 새롭게 유입되는 것에 관심을 두기 마련이다. 내 주머니 속 자산보다 당장 소비하는 것에 더 흥미를 갖는다. 자산은 가치와 이익의 원천이요, 소비는 지출 대상이다. 유통 창출은 국내총생산 증가를 돕는다는 이유로 이 같은 현상을 통계도 나서서 거든다. 그 수익을 얻기 위해 인간의 힘으로 지어 올렸거나 자연적으로 가꾸어진 자산이 파괴되고 다음 세대의 번영과 안전이 위험 지경에 이르는데도 말이다.
 
6. 특정 집단이 후세를 위하여 어떤 식으로 그들의 자산을 보호하는지를 들여다보면(즉, 그 집단이 어떤 측면에서 ‘긍정적’인지를 살펴보면), 제노바 경제를 파탄으로 이끈 교량 부실 문제가 더욱 명백하게 드러날 것이다. 포지티브 플래닛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들을 대상으로 각국의 ‘긍정성’을 평가해온 이래 이탈리아는 항상 하위권에 머물러왔다. 특히 사회기반시설 관리 소홀이 눈에 띄는 문제로 꼽혀왔다.
 
7. 이탈리아는 긍정성 지수면에서 하위권에 자리함으로써 다가오는 앞날에 대해 이탈리아인 자신들이 느끼는 두려움을 드러냈다. 이는 또한 소위 ‘옛날이 좋았다’라는 믿음과도 통한다. 그 믿음의 결과로 출생률은 바닥을 치고 포퓰리즘의 물결이 거세다. 극우정당 ‘동맹’을 이끄는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의 득세와 제노바 다리 붕괴에는 앞날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감 부족을 시사한다는 면에서 접점이 있다.  
      
   8. 이탈리아보다 조금 나은 형편이라고 하지만, 프랑스도 동일한 패턴의 위협에 노출돼 있다. 주인 아닌 손님으로서 빌려 쓰는 사회기반시설을 관리하고, 앞날의 물질적·정신적 자산을 보살피고,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파괴하지 않는 것은 가장 우선적으로 중시해야 할 사안이다. 문제를 해결하자면 긍정성 지수를 점검하고 곤란을 해소하며, 그 과정을 거치는 동안 믿을 수 있는 정책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9. 더 넓게는 우리 각자의 처신을 긍정적으로 이어가야 할 것이다. 즉, 다음 세대를 위해 유익한 방향으로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제 자식 예쁜 줄만 알 것이 아니라 집단의 운명이 결부된 미래 사안들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의미다.
 
10. 이를 통해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깨닫게 될 것이다. 쓰레기 분리수거처럼 사소한 것이든, 자연·문화유산 보호처럼 거창한 것이든 지금 바로 나서야 한다. 이렇게 실천할 때 우리 삶에는 일대 변혁이 일어난다. 그때 우리가 영위하는 삶은 보다 만족스러운 것이 될 것이다.
 
자크 아탈리 아탈리 에아소시에 대표·플래닛 파이낸스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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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중앙일보] [아탈리 칼럼] 일어날 일은 기어이 일어나고야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