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는 미인계의 발상지
중국 역사상 절세의 용모로 이름을 떨친 미인은 800명쯤 된다. 그중 군계일학(群鷄一鶴)처럼 ‘4대 미인’으로 일컬어지는 이들이 있다. 이들에겐 ‘침어낙안 폐월수화(沈魚落雁 閉月羞花)’라는 수식어가 따른다.
침어(沈魚)의 주인공은 춘추시대 말기 월(越)나라의 서시(西施). 그의 미소에 연못 속 물고기가 헤엄치는 걸 잊고 가라앉았다. 낙안(落雁)은 한(漢)나라 왕소군(王昭君)을 일컫는다. 그가 뜯는 처량한 비파 음색에 기러기마저 시름에 잠겨 내려앉았다. 폐월(閉月)은 후한의 초선(貂蟬)을 가리킨다. 밤하늘의 달조차 부끄러워 구름 속으로 얼굴을 가렸다고 한다. 수화(羞花)는 당(唐) 현종(玄宗)을 녹인 양귀비(楊貴妃)가 주인공. 꽃 또한 그가 내미는 손을 잡기가 수줍어 고개를 떨궜다는 것이다. 중국식 과장법의 극치를 보는 듯한 수사다.
가인(佳人)은 전란기에 스파이로 동원돼 왔다. 고대 병법 삼십육계(三十六計) 중 패전계(敗戰計)의 첫 번째인 제31계가 미인계(美人計)다. ‘적이 강하면 그 장수를 먼저 공략하라(兵强者 攻其將). 장수가 총명하면 그 정욕을 활용하라(將智者 伐其情)’. 미인계는 강력한 적과 맞닥뜨렸을 때 적장을 유혹해 상대의 전력을 분쇄하는 계략이다. 십중팔구 미인에 약한 남자의 급소를 정확하게 찌른다. 효과 대비 비용 부담이 크지 않다. 주(周) 태공망(太公望)이 지었다고 알려진 육도삼략(六韜三略)에서도 ‘미인으로써 즐기게 하라(娛以美人)’며 미인계를 권한다.
그래서인가. 오늘의 중국에서도 미인계는 난무한다. 2004년엔 미인계에 걸려든 상하이 주재 일본 총영사관의 외신관이 자살했고, 2008년엔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의 방중 수행원이 상하이에서 미모의 중국 여성과 하룻밤을 보낸 뒤 정보의 창고인 휴대전화를 분실해 소동이 일었다. 최근엔 우리 상하이 총영사관이 도마에 올랐다. 미인계에 낚인 게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눈여겨볼 건 미인계의 발생지가 상하이라는 점이다. ‘쑤저우·항저우 미인이 천하제일(蘇杭美女甲天下)’이라는 말처럼 상하이 인근 지역에 미녀가 많아서일지 모른다. 그보다는 베이징의 엄숙함에 긴장했던 이국 외교관들이 상하이의 분방함에 풀어졌기 때문이리라. 상하이의 밤은 외교(外交)가 아닌 외도(外道)로 깊어가는 것일까.
유상철 중국연구소 소장 scyo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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