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인의 땅의 歷史

[박종인의 땅의 歷史] 神의 비밀을 품고 기사들은 수도원 속으로 사라졌다

bindol 2021. 12. 17. 04:03

[184] 포르투갈 기행 ② 템플기사단과 토마르

12세기 이슬람 세력과 싸워 예루살렘 탈환한 유럽 세력, ‘템플기사단’ 조직해 富 축적
1307년 프랑스 필리프 4세, 템플기사단 전격 해체… 포르투갈은 ‘그리스도기사단’으로 계승
토마르 수도원에는 템플기사단의 흔적 남아… 숨 막히게 하는 종교-세속 미학의 극치
포르투갈의 기원 포르투는 고서적에서 나온 듯한 풍경
’해리 포터' 배경 렐루서점… 마법학교 교복 대학생… 역사와 판타지를 오가는 기이한 여행

입력 2019.10.15 03:00
 
 
 
 
 

1118년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순례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예루살렘에서 템플기사단(Order of the Temple)이 설립됐다. 21년 뒤인 1139년 아폰수 1세가 포르투 칼레 지역에서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 나라를 세웠다. 그 중심 도시는 포르투(Porto)다. 포르투 칼레는 그대로 국명 포르투갈로 이어졌다. 1290년 포르투갈 왕 디니스가 코임브라에 대학교를 세웠다. 코임브라대 교복은 까만 망토다. 군사력과 금력으로 유럽을 지배하던 템플기사단은 1307년 프랑스 왕 필리프 4세에 의해 지도부가 화형당하며 전격적으로, 순식간에 공식 역사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호그와트 마법학교 학생들은 코임브라대 교복을 입었다. 또 그런데 포르투갈 토마르(Tomar)에는 템플기사단이 만든 예배당이 찬란하게 서 있다. 또 그런데 신트라 헤갈레이라 정원에는 템플기사단 후예라 자칭하는 프리메이슨(Freemason)의 흔적이 있다. 또 그런데 대한민국 서울 양화진외국인묘역에는 이 프리메이슨 회원들이 잠들어 있다. 뒤죽박죽 엉망진창 혹은 복잡다기. 낭만적이기 짝이 없는 포르투와 토마르 풍경은 계절마다 바뀌지만, 풍경 속에 숨은 역사는 사슬처럼 지구를 휘감으며 21세기로 이어진다.

느닷없이 사라진 템플기사단 이슬람 세력에게 점령당한 예루살렘을 회복하겠다고 유럽 기독교 국가가 벌인 전쟁이 십자군전쟁이었다. 1095년 출병한 연합 십자군은 동로마를 거쳐 4년 뒤 예루살렘에 입성했다. 순례자가 급증했다. 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템플 기사단(성전 기사단)이 예루살렘에 설립됐다. 본부는 통곡의 벽 꼭대기 솔로몬 성전(Temple) 자리에 지었다. 유럽 순례자들은 템플 기사단 유럽 지부에 현금을 맡기고 통장을 받아 예루살렘 본부에서 현금으로 바꿨다. 기사단은 막대한 부를 누렸다.

포르투갈 토마르 그리스도수도원의 예배당. 12세기 템플기사단이 기도실로 건설했다가 15세기 엔히크 왕자에 의해 예배당으로 증축됐다. 예루살렘에 있는 성분묘교회처럼 팔각 평면 위에 건립됐다. 기독교 권력이 극성기였던 시대에 종교 건축물이 어디까지 화려할 수 있나를 알 수 있는 곳이다. 넋이 나간 듯한 관광객들 표정이 인상적이다.

유럽 본부가 있던 프랑스의 왕 필리프 4세는 그 꼴을 두고 보지 않았다. 1307년 10월 13일 금요일 127개에 달하는 혐의를 뒤집어쓰고 기사단 전원이 전격 체포됐다. 악마와 우상 숭배, 동성애 혐의도 있었다.

1310년 4월 템플 기사 54명이 파리 교외 상리스에서 화형됐다. 재산도 몰수됐다. 1312년 3월 22일 필리프 4세와 손잡은 교황 클레멘스 5세는 템플 기사단 해체를 전격 선언했다. 혐의는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안상준, '템플 기사단 해체와 필리프 4세', 2008) 200년 동안 세상을 움직이던 기사단이 5년 만에 흔적도 없이 거세됐으니, 뒷말이 무성했다. 이탈리아 작가 단테는 누명이라고 했다('신곡' 중 '연옥'). 소설 '장미의 이름'(움베르토 에코), 영화 '인디아나 존스'까지 템플기사단은 '지금도 활동 중'이라는 주장까지 돈다.

토마르와 그리스도 기사단 포르투갈 왕 디니스는 템플기사단을 해체하라는 교황 명령을 거부했다. 기사들은 이슬람을 몰아내고 포르투갈을 세운 동지들이었다. 1309년 11월 27일 디니스는 기사단을 왕실로 배속했다. 1319년 템플기사단을 계승한 '그리스도 기사단(Order of Christ)'이 출범했다. 포르투갈 왕실은 이들과 함께 대항해시대를 열어갔다. 항해왕 엔히크 왕자는 그리스도 기사단의 단장이었다. 템플 기사들의 흔적은 대륙 전역에서 사라지고 없지만 포르투갈에서는 아주 찬란하고 위풍당당한 유적을 찾을 수 있다. 바로 토마르다.

토마르 그리스도 수도원 전경. 템플기사단이 요새로 만들었다가 수도원으로 바뀌었다.

토마르는 리스본에서 열차로 1시간 40분 걸린다. 마을은 1160년 템플기사단이 요새를 세우면서 생겨났다. 구전에 따르면 템플기사단이 이곳에 도착했을 때 달아나는 멧돼지를 보며 '저놈 잡아라(Tomar)!'라고 해서 마을 이름이 토마르가 됐다. 광장에는 그때 단장인 괄딤 파이스 동상이 서 있다. 템플기사단은 이곳에 포르투갈 본부를 세웠다.

요새는 수백 년 동안 증축과 개축을 거듭했다. 12세기에 지은 성채와 기사단 기도실, 14세기 이후 포르투갈 왕실이 지은 수도원과 회랑이 중첩되면서, 수도원은 유럽 건축양식 박물관처럼 사람 눈을 어지럽힌다. 밧줄과 조개와 물풀과 범선 문양으로 15세기 대항해시대를 마음껏 자랑하는 마누엘 양식 문이 시작이다. 그리고 제대로 한-번-놀-라-본-다. 종교 권력과 세속의 권력이 융합했을 때 펼쳐진 그 세계에.

 

그리스도 수도원의 찬란함

담백한 12세기 로마네스크, 위압적인 15세기 고딕양식과 장식미 가득한 포르투갈 마누엘 양식까지 당대 유럽 건축양식들이 수도원에 혼재돼 있다. 예배당은 화려함에 숨이 막힐 정도다. 원래 예배당은 서기 336년 예루살렘 예수 무덤 위에 건설된 성묘교회를 본떠 만든 기도실이었다. 8각형을 그리며 세운 8개 기둥 벽면 안팎으로 프레스코와 템페라 성화가 가득하다. 그 바깥에 또 기둥이 늘어서 16면 외벽이 기도실을 감싼다. 벽화 사이는 모조리 금박으로 마무리했다. 찬란하다!

해 질 녘 포르투 구도심 전경. 포르투는 포르투갈 왕국의 기원이 된 도시다.

1515년 마누엘 1세는 서쪽 외벽을 터서 아치를 만들고 기도실을 예배당으로 바꿨다. 본격적인 대항해시대 주역 마누엘 1세는 그 서쪽에 거대한 창문을 내고 온갖 바다 문양으로 장식했다. 1810년 나폴레옹 부대가 벽화들을 상당수 훔쳐갔지만, 그래도 찬란하다! 템플기사단이고 뭐이고, 관광객들은 서로 얼빠진 얼굴을 바라보며 다른 방으로 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사라졌던 템플기사단은 결사조직 '프리메이슨'이 그 맥을 이었다. 스코틀랜드로 도주한 기사단이 켈트족 결사체와 융합해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들이 사용했던 심벌이 자와 컴퍼스, 그리고 신트라 헤갈레이라 정원 예배당 천장에서 만났던 '모든 것을 보는 눈(All-Seeing-Eye)'이다. 먼 훗날 동아시아 조선에 왔던 선교사들 가운데 '대한매일신보'를 만든 영국인 베델과 올리버 에비슨도 프리메이슨이었다. 서울 양화진 외국인묘역에는 프리메이슨 상징을 새긴 비석들이 눈에 띈다.(안신, '한국프리메이슨의 역사와 특징', 2010)

토마르 유대인 거리. 1497년 유대인들은 강제 개종되거나 추방됐다.

1497년 포르투갈 왕실은 순혈 기독교왕국을 꿈꾸며 유대인들을 추방하거나 강제 개종시켰다. 이베리아반도에 있던 유대인은 가짜로 개종하며 숨어 살거나 영국, 네덜란드, 독일로 떠났다. 유대인이 떠나고 감옥과 창고로 쓰였던 유대 예배당이 읍내에 남아 있다. 읍내는 아무 일 않고 한 몇 달 멍하게 살기 딱 좋다.

포르투갈의 기원 포르투와 렐루서점

토마르에서 북쪽으로 두 시간 거리에 포르투가 있다. 구도심 전체가 옛날 그대로다. 해 질 녘 세라두필라르 수도원에서 보는 풍경은 고서점에서 꺼낸 판화처럼 보인다. 그 도심에 있는 유대인 거리 한쪽 벽에는 이런 명판이 붙어 있다. '강제로 개종하거나 죽음밖에 없었던 모든 포르투갈 유대인을 기억한다. 땅이여, 그들이 흘린 피를 덮지 말지어다.'

영화 ‘해리 포터’에 나왔던 포르투의 렐루 서점. 작가 조앤 롤링이 포르투에 살면서 소설 배경으로 찍어뒀던 서점이다.

그 모든 역사를 버무린 판타지소설이 영국 소설가 조앤 롤링의 '해리 포터'였다. 1991년 롤링은 포르투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만 2년을 살았다. 그때 본 코임브라대 학생들 망토가 호그와트 마법학교 교복이 되었고, 즐겨 찾았던 유서 깊은 렐루 서점이 마법 참고서를 파는 서점이 됐다. 덕분에 렐루 서점은 입장료(5유로) 수익이 서적 판매 수익보다 많은 서점이 됐다. 도시는 마법이고 온통 판타지였다.

세상은 그렇게 원인이 결과로, 결과가 또 다른 원인으로 굴러가는 판타지가 아닌가.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인천공항 입국장에 와 있었고 지금 글을 쓰고 있다. 분명히 토마르 수도원에 무언가를 두고 온 듯한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포르투갈 여행법〉

1. 리스본에서 포르투, 토마르까지 모두 열차 운행. 문의 유레일 한국 홍보사무소. 2. 추천 호텔: ①포르투 Vila Foz Hotel: 19세기 저택을 개조한 바닷가 부티크호텔.  ②토마르 Hotel Casa dos Ofícios: 넓은 공용 거실이 있는 가족호텔. 읍내와 그리스도수도원에서 걸어서 10분. 3. 기타: 포르투갈 전문 가이드 남선영. 포르투갈어, 영어와 역사에 해박한 전문 가이드. 나 홀로 여행에 익숙지 않고 전문적인 안내를 원하는 팀에 추천. 4. 각종 정보: 포르투갈관광청 한국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