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진의 차이나는 차이나

[신경진의 서핑 차이나] 몸집 불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아시아판 나토 꿈꾸나

bindol 2021. 12. 20. 18:33

[신경진의 서핑 차이나] 몸집 불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아시아판 나토 꿈꾸나

중앙일보

역내 다자안보기구로 출범 유라시아를 아우르는 포괄적 다자 안보체제로 발전한 상하이협력기구(SCO) 8개국 정상들이 10일 칭다오 회의에 앞서 기념촬영을하고 있다. 왼쪽부터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소론바이 제엔베코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 에모말리 라흐몬 타지키스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맘눈 후세인 파키스탄 대통령. [AP=연합]

“상하이협력기구(SCO)의 구매력 총합은 G7의 구매력을 넘어선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유라시아를 포괄하는 다자기구로 성장한 SCO의 미래를 강조하며 한 말이다. 지난 10일 칭다오(靑島) SCO 정상회담이 끝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푸틴 대통령은 “주요 7개국(G7)은 돈을 가졌지만, SCO는 규모가 더 크고 더 많은 이점을 가졌다”고 말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던진 러시아의 G7 복귀 러브콜을 거부하면서 푸틴이 선택한 SCO의 위상이 치솟고 있다.

중국 소셜네트워크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화목한 SCO와 갈등의 G7 정상의 모습을 대조해 편집한 사진 [웨이보 캡처]

인도 합류로 중·러와 신 삼국지 펼쳐져

SCO는 1990년대 구소련 붕괴로 촉발된 국경분쟁을 해소하기 위해 1996년 결성된 역내 다자 안보기구인 ‘상하이 5국’을 모체로 한다. 2001년 우즈베키스탄이 합류해 테러리즘·극단주의·분열주의 3대 불안 요인 척결을 기치로 출범한 뒤 경제·문화로 협력분야를 넓혀왔다.

이번 칭다오 회의는 처음으로 8개국 체제로 개최됐다. 2012년 SCO 옵서버 국가로 합류한 앙숙 인도와 파키스탄이 지난해 정식으로 가입한 뒤 처음 참가했다. 유라시아의 3대 강국인 중국·러시아·인도가 새로운 삼국 체제를 정립(鼎立)했다. 여기에 다섯개 ‘스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우즈베키스탄·파키스탄)이 포진하며 몸집을 불렸다. 유라시아 면적의 60%, 세계 인구의 42%, 세계 GDP의 21%를 포괄하는 다자 협력기구(중국 명칭은 ‘상하이 합작조직’)로 부상했다.

SCO 주도권을 지키려는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칭다오에서 공자와 런민비(인민폐) 카드를 꺼냈다. “만국이 협력하고 평화롭게, 마음을 합쳐 서로 돕는다면 세계는 한 가족(協和萬邦 和衷共濟 四海一家)”이라며 유교의 가르침 12자를 제시했다. SCO은행연합기구에 300억 위안(약 5조1000억원) 규모의 전용 차관도 통 크게 약속했다.

인도는 활약을 예고했다. 정상 기념 촬영 때 신입 회원국인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관례에 따라 가장자리에서 포즈를 취했다. 하지만 자리를 옮길 때마다 모디 총리가 의도적으로 시진핑 주석, 푸틴 대통령과 어깨를 마주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모디 총리는 “인도는 새로운 성원으로 SCO에서 적극적 역할을 발휘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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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가입으로 SCO는 ‘독재자 클럽’이란 오명을 벗으면서, 중국의 독주도 견제할 수 있게 됐다. 아르툠 루킨 러시아 극동연방대 교수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중국은 인도 가입 등 SCO 확대에 부정적이었다”며 “확대 SCO는 유라시아 대륙을 지배하려는 중국의 시도를 다각적으로 견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당사국 인도가 SCO 안에서 중국의 일대일로(육·해상 신실크로드) 전략과 미국의 기존 아시아 패권까지 동시에 견제하는 균형자 역할을 할 전망이다. 미국 주도 군사동맹인 나토의 회원국이자 친미 국가인 터키도 지난 2012년 대화 상대국으로 SCO에 발을 담갔다.

역내 다자안보기구로 출범 유라시아를 아우르는 포괄적 다자 안보체제로 발전한 상하이협력기구(SCO) 8개국 정상들이 10일 폐막 기자회견에서 칭다오 선언 등 합의 문건에 서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소론바이 제엔베코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 에모말리 라흐몬 타지키스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맘눈 후세인 파키스탄 대통령. [AP=연합]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칭다오선언 한반도 평화 이니셔티브 지지

올해 칭다오 선언은 예상을 깨고 비회원국인 한반도 문제를 언급했다. “회원국은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국제사회가 한반도 정세 완화, 한반도 비핵화 촉진, 동북아의 지속적인 평화 수호를 위해 제출한 평화 이니셔티브를 지지한다”고 명시했다. 박상남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는 “한반도를 자신의 영향권으로 보는 중국은 과거 북한의 SCO 가입을 반대하는 등 한반도와 SCO의 연계를 꺼려왔다”며 “칭다오 선언에 한반도가 포함된 것은 푸틴의 영향력이 작용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푸틴은 전체 회의 연설에서 “러시아와 중국이 제안한 로드맵 틀에 따라 대화와 협상을 통해 위기를 해결하려는 남·북·미의 의지를 긍정 평가한다”며 “SCO도 한반도 정세의 정상화를 지속해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에 시진핑 주석은 회의 기간 동안 한반도 문제를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중국은 칭다오 선언을 폐막 다음 날 공개했고 시 주석 연설보다 의도적으로 부각하지 않았다.

SCO가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하면서 남북 SCO 동시 가입 주장도 나왔다. 박상남 교수는 “북한은 미국 외의 다자기구가 체제를 보장한다는 점에서, 러시아는 한반도에서 중국의 독주를 견제한다는 점에서 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걸림돌은 중국이다. 자오퉁(趙通) 칭화대-카네기 세계정책센터 연구원은 “만일 북한이 철저히 핵 폐기를 실현하고 국제 제재를 받지 않는다면 가능하다”면서도 “하지만 한·미 군사동맹 관계가 가입에 장애가 될 수 있다”며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하지만 싱가포르 북·미회담에서 합의된 ‘완전한 비핵화’가 달성된다면 SCO가 미래 한반도 평화체제를 후원하는 안전장치가 될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다.

SCO가 역내 비핵화를 보장한 선례도 존재한다. SCO는 지난해 카자흐스탄 아스타나 선언에 이어 칭다오 선언에서도 과거 핵보유국이 비핵화에 성공한 첫 번째 모범사례로 꼽히는 ‘중앙아시아 비핵지대화 조약’ 의정서 지지를 재확인했다. 2006년 중앙아시아 5개국이 역내 핵무기의 생산·취득·보유 등을 금지하며 체결한 이 조약은 핵무기 비확산(NPT) 체제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최근 북한 비핵화 모델로 주목받은 ‘넌-루가법(Nunn-Lugar Act)’의 대상국인 카자흐스탄이 이 조약의 핵심 당사국이자 SCO 회원국이다.

SCO는 한국이 중국시장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이고 대안 시장을 확보하는데 유용한 협력 플랫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양갑용 성균중국연구소 교수는 “유라시아 북방과 남방 경제권을 연결해 시장 통합을 추구하는 현 정부의 신북방-신남방 정책의 연대 기구로 SCO가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검토가 필요하다”라고 했다. 한국의 비즈니스 협력공간을 중국 이외에 러시아·몽골·인도·중동으로 확대하는데 SCO가 유용한 대화 채널로 기능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칭다오=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