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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북 3시간 지나도록 몰랐던 육군 22사단

bindol 2022. 1. 3. 04:33

월북 3시간 지나도록 몰랐던 육군 22사단

중앙일보

입력 2022.01.03 00:10

육군 1사단 도라OP 철책에 과학화경계시스템 구축의 일환으로 광망이 설치돼 있다. 광망은 철책에 설치하는 그물모양의 감지장비다. [사진공동취재단]

CCTV 찍히고 경보 울렸는데도 최전방 뚫려

강한 훈련과 군기 확립만이 국민 생명 지켜

새해 벽두부터 전방 철책이 뚫렸다. 올해 첫날인 지난 1일 오후 강원도 동부 고성지역을 맡은 육군 22사단 최전방 철책선을 통해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민간인(추정) 1명이 북한으로 넘어갔다. 군 당국은 월북자가 비무장지대 남쪽 철책선(GOP 철책)을 넘어갈 때 우리 군의 감시장비에 포착됐는데도 놓쳤다. 뒤늦게 CCTV 감시병이 녹화된 내용을 재생하는 과정에서 철책을 넘는 모습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군의 허술한 전방 경계가 또 다시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번 경계에 실패한 부대의 조치 과정은 더 심각하다. 철책을 넘을 당시 철책에 설치된 과학화 경계시스템의 광망체계에서 경보를 냈고, 초동 조치 부대가 현장으로 출동했다고 한다. 그런데 출동한 부대는 철책에 이상이 없다고 판단한 뒤 철수했다는 것이다. 매일 점검하는 철책은 조그마한 문제만 있어도 금세 파악할 수 있다. 더구나 22사단 지역의 철책은 2012년 노크귀순 이후 두 차례 이상 철책을 보강해 쉽사리 넘어가기도 어렵지만, 설사 철책 위로 넘어갔더라도 훼손된 흔적이 남게 돼 있다. 동물 등으로 인한 잦은 오경보로 생각하고 안이하게 지나쳤을 가능성이 있다. 평소 경각심이 해이해진 결과로 보인다.

‘헤엄 귀순’ 그 장소서 또 월북.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군의 경계 실패는 한두 번이 아니다. 이번에 뚫린 22사단은 2012년 노크귀순에서부터 시작해 2020년 11월 월책귀순, 지난해 2월 오리발을 이용한 헤엄귀순 등 매년 침투가 발생하는 지역이다. 잇따른 경계 실패로 22사단장을 비롯한 숱한 지휘관이 보직 해임됐다. 그런 민감한 지역인데도 경계에 또 실패한 것이다. 도대체 정신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더구나 월북자가 과학화 감시장비에 포착된 지 세 시간이나 지나도록 모르고 있었다니 경계근무를 서기나 한 것인가.

문재인 정부에서 경계 실패가 크게 늘었다. 지난 2년 동안 전후방을 포함해 경계 실패가 11번이나 된다. 삼척항에서 해상판 노크귀순을 시작으로 진해와 제주 해군기지 침입, 수방사 방공부대 침범, 태안지역 중국인 밀입국 등이 대표적이다. 말 그대로 심각한 수준이다. 과거 어느 때도 전후방 경계선이 이번 정부처럼 마구 뚫린 적은 없었다.

군의 경계 실패 원인은 우리 군이 적이 없는 군대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과 종전선언 추진 등에 편승해 북한군을 적으로 여기지 않고 있다. 설상가상 군이 정치에 휘둘려 군 인사에 대한 외부 개입이 심해졌다. 군 간부는 정치권을 의식해 강한 훈련과 군기 확립보다는 책임 부담이 적은 안전 위주로 운영해 오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군대가 본분을 잊으면 안보가 위험해진다. 그 최대 피해자는 국민이다. 강한 군대로 거듭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