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AI 알고리즘, 모르면 당한다

폭설이 내린 지난 연말, 배달 주문이 폭증하자 배달의민족·쿠팡이츠 배달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들의 겉모습은 비슷해 보였지만, 사실은 두 부류였다. 한 부류는 AI(인공지능) 배차 시스템의 알고리즘(AI가 작동하는 원칙)을 이해하는 배달원, 또 다른 부류는 이에 무관심한 배달원들이었다. 알고리즘을 이해하는 배달원들은 초 단위로 바뀌는 단가를 확인해 배달 수수료가 높은 건수를 골라 잡았고, 언덕·음지 배달을 최소화했으며, 배차 거절 횟수를 세어 가며 ‘배차 중지’ 등 불이익을 피해갔다. 이들의 시급은 알고리즘에 무관심한 배달원들에 비해 많게는 2~3배 높았다.
개인의 경쟁력이 AI 알고리즘에 대한 이해도에 따라 달라지는 시대다. AI 알고리즘이 검색 엔진, 뉴스 플랫폼부터 인터넷 쇼핑, 배달, 택시 배차까지 일상생활에 깊숙이 파고들면서 ‘알고리즘을 아는 것이 힘’이 됐기 때문이다. 요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추천 알고리즘이 선호하는 제목이나 소개글을 달기 위해 공부한다. 쇼핑 고수들은 인터넷에서 물건을 살 때 최대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접속 루트’를 고민한다. 예를 들어 특정 쇼핑몰에 네이버 등 포털 사이트를 통해 접속하면 할인 혜택이 적용되지 않는 것을 간파하고 인터넷 창에 직접 주소를 입력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과거 인터넷이 어떻게 사람들을 두 부류로 갈랐는지 떠올리게 한다. 2000년대 들어 인터넷 사용 가능 여부는 ‘줄을 서느냐 마느냐’를 결정지었다. 인터넷에 익숙한 사람들은 인터넷 주문·예약·신청을 통해 줄 서는 일이 거의 없게 됐지만, 인터넷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은 아직도 택시 승강장·기차역·은행·마트 앞에서 줄을 서야 했다. AI 알고리즘에 대한 이해도 이와 비슷하게 개인의 업무 능력과 삶의 편의, 금전 혜택의 차이를 가져다 주고 있다.
결국 우리는 또다시 ‘학생’이 되어 알고리즘에 대해 배워야 하는 처지가 됐다. 혁신적인 기술은 우리에게 적응을 요구할 뿐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수많은 비(非)기술 분야 종사자들이 ‘코딩’을 교양 지식으로서 배우고 있고, AI가 적용된 다양한 상품·서비스를 경험하며 ‘얼리 AI 어답터’로 거듭나고 있다. 전 연령층이 ‘디지털 리터러시(문해력)’에 이어 ‘AI 리터러시’를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알고리즘을 알아야 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다. 각종 상품·서비스의 알고리즘은 주입하는 데이터와 방식에 따라 편향될 때가 많고, 거대 기업이 조작하고 있다는 의혹도 끊임없이 제기된다. 개인이 보고 싶은 정보만 보여줘 알고리즘이 현실 왜곡을 일으킨다는 지적도 있다. 알고리즘에 대해 무지하다면 이러한 기술의 오남용 앞에서 항의는커녕 무기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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