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가 있는 아침

(39) 회고가(懷古歌)

bindol 2022. 1. 27. 16:20

(39) 회고가(懷古歌)

중앙일보
 
 

유자효 시인

회고가(懷古歌)

원천석(1330∼?)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추초(秋草)로다
오백년 왕업이 목적(牧笛)에 부쳐시니
석양에 지나는 객이 눈물겨워 하노라

- 청구영언 

왕이 찾아 헤맨 스승

1392년, 고려가 망했다. 유신(遺臣) 운곡(耘谷) 원천석(元天錫)이 고려의 궁궐터 만월대(滿月臺)를 찾았다. 나라가 흥하고 망하는 것은 운수에 달려 있으니 마치 가을 풀잎과 같다. 오백 년 고려의 왕업이 목동의 피리 소리에 담겨 있구나. 때는 석양, 지나는 길손이 눈물겨워 한다.

운곡은 고려말 정치의 어지러움을 보고 치악산에 들어가 부모를 봉양하며 숨어 살았다. 이방원을 가르쳐 18세 때 고려조의 과거에 장원 급제하자 당시 변방의 장군이었던 이성계는 ‘가문의 위상을 세웠다’며 기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과거에 급제한 왕으로는 조선 태종이 유일하다. 그가 즉위하고 스승을 찾았으나 응하지 않았다. 태종이 원주로 몸소 거동했으나 피하고 만나지 않았다.

태종이 사흘 동안 머물며 앉아 쉬었다는 섬돌을 후세 사람들이 ‘태종대(太宗臺)’라 일컬었는데 지금의 각림사(覺林寺) 곁에 있다. 이 일대에는 3백 리 길을 내려온 태종이 스승을 찾아 헤맨 것과 관련한 지명이 많다. ‘대왕재’ ‘원통재’ ‘수레너미’ 등이 그러하다. 운곡은 만년에 고려 말, 조선 초의 야사 6권을 저술해 “이 책을 가묘에 감추어두고 잘 지키도록 하라”고 유언했으나 내용과 관련된 화를 두려워한 증손이 불살라버렸다고 한다.

유자효(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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