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column

[분수대] ‘학자’ 조국 ‘수석’ 조국

bindol 2018. 9. 13. 06:04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미투’ 운동이 벌어지는 걸 보고 저작(『형사법의 性편향』)을 개정, 이달 초순 개정판을 낸 그다. ‘전면 개정’이란 문구가 과장이 아닐 정도로 그간 변화상을 담아냈다.
 
“2003년 이 책의 1판을 출간하면서 강간죄의 법리에 강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성 편향을 제거하고 성적 자기결정권의 의미를 심각하고 진지하게 사고하는 강간죄 해석론과 입법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당시 저자의 입장은 학계에서 유별난 소수설로 취급받았다. 다행히도 시간이 흐르면서 형법도 개정되었고 판례와 학설도 변경되었다.”
 
자신의 주장대로 변했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그는 “‘여성에게 조국은 없다’고 외치며 거리에 나온 여성의 마음”을 거론했다. 아직도 바뀌어야 할 게 많다는 취지였다.
 
조국 서울대 교수이자 청와대 민정수석의 저술 얘기다. 사실 책 표지엔 ‘조국 지음’으로 돼 있다. 하지만 머리말에 청와대 민정수석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 얼굴 사진도 지난 3월 청와대에서 브리핑하던 당시의 것을 썼다. 직함을 병기한 까닭이다. 그도 자신의 ‘이중 신분’을 인식했다. 머리말 말미에 “이 책의 주장은 저자가 ‘학자’로서 제기하는 것이지, ‘민정수석’으로 제기하는 것은 아님을 밝힌다”고 했다.
 
책엔 이런 대목들이 있다. “여성운동 단체와 여성학계가 저자의 논변을 찬찬히 검토해 주길 희망한다.” “겸허한 마음으로 학계, 법조계, 입법부에서 저자의 해석론과 입법론을 검토해 주시길 기대한다.” 학자의 요청만으로 여겨질까.  
     
그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1심 판결도 언급했다. “대법원 판결의 변화와 배치된다.” 역행했다는 비판이다. 천정배·강창일·나경원·이명수·곽상도·백혜련·정춘숙 의원 등이 대표 발의한 법안들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건 또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바쁜 짬을 내 책을 쓴 그의 성실성이 놀랍다. 하지만 감탄하고 있기엔 껄끄러운 점이 적지 않다. 우선 수석으로서 업무 관련성 우려다. 본인은 학자·수석의 자리를 명확히 구별할 테지만 상대방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학자로서의 제기’란 그의 주장은 자칫 ‘위력은 존재하되 위력을 행사하지 않았으니 위력은 없는 것’이란 공허한 수사일 수 있다. ‘수석=비서’란 본질적 문제도 있다. 장막 뒤에서 일해야 할 이가 은막 위로 올라서는 격이어서다. 마이크를 잡고 기고(법률신문)를 하더니 저작 활동을 했다. 백악관의 고위직이 현직에서 책을 쓴다? 상상하기 어렵다. 하기야 ‘청와대 정부’이니 상상 그 이상을 상상해야 하나 보다. 비록 괴이한 일이더라도 말이다.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출처: 중앙일보] [분수대] ‘학자’ 조국 ‘수석’ 조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