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오백 년 도읍지를
중앙일보
입력 2021.07.08 00:16
유자효 시인
오백 년 도읍지를
길재(1353∼1419)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 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 하되 인걸은 간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 병와가곡집
역사를 바로 보아야 한다
광화문에 나갔다. 온통 파헤쳐진 지하에 조선 시대 육조 터가 드러나 있었다. 이곳에서 세종 때 주조된 훈민정음 금속 활자가 발견되었다. 이는 세계사적으로도 의미가 큰 발견이다. 일제에 의해 훼손된 광화문과 경복궁이 복원됐고 이제 육조거리도 복원될 것이다. 경복궁을 굽어보고 있는 인왕산도 조선 때 모습 그대로이다. 이렇게 산천은 그대로 있건만 그 시대의 사람들은 간 곳이 없다.
소개한 시조는 고려 삼은(三隱)의 한 분인 야은(冶隱) 길재(吉再)가 망국 고려의 도읍 터 개경을 돌아보며 읊은 것이다. 당시만 해도 고려궁궐 만월대도 그대로였을 것이다. 옛 도성을 지키는 송악산의 모습도 여전하건만 오직 만월대를 드나들며 국사를 논하던 사람들의 모습만 찾을 길 없다. 조선 시대에 길재가 고려의 도읍지를 돌아보며 느끼던 감회나, 오늘날 우리가 조선의 유적을 보며 느끼는 감회나 근본은 큰 차이가 없다.
이 시조는 500년 이상 사람들에게 널리 불렸다. 특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다’는 인생과 정치의 무상함을 일깨우는 데 흔히 차용되었다. 과거는 현재의 스승이다. 역사 앞에 겸손해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현대사 논쟁이 뜨겁다.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역사를 바로 보아야 한다.
유자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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