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가 있는 아침

(104) 섣달 그믐 밤

bindol 2022. 1. 31. 16:55

(104) 섣달 그믐 밤

중앙일보

입력 2021.12.30 00:16

 

 

유자효 시인

섣달 그믐 밤
이승만(1875~1965)

반 평생 섣달 그믐 나그네로 보내더니
해마다 이 밤이 오면 집 그리던 게 버릇이 되어
집으로 돌아와서도 집을 도로 그리네

-한국시조큰사전

세모에 생각하는 초대 대통령

초대 대통령 이승만(李承晩) 박사는 11편의 시조를 남겼다. 1955년에 쓴 이 시조는 풍찬노숙(風餐露宿)의 독립운동가 시절, 섣달 그믐이면 더욱 사무치던 향수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광복된 조국에 돌아왔건만 섣달 그믐이면 집을 도로 그리워하니 향수가 버릇이 되었나 보다. 여든한 살 때 쓴 이 작품은 작자의 심경을 빼어나게 그려낸 수작이다. 실제로 그의 고향은 황해도 평산군 능내동이다.

구한말 언론인으로 독립협회를 조직해 정부 개혁에 앞장서다가 투옥, 석방된 뒤에 도미(渡美)해 하바드대에서 석사 과정을 수료하고 프린스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19년 3·1 운동으로 수립된 상해 임시정부에 초대 대통령으로 피선되는 등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그러나 3·15 부정선거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하야, 하와이에 망명해 쓸쓸히 타계했으니 오늘의 정치인들이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일이다. 또 다른 그의 시조 한 수를 다시 읽는다. 대통령이란 이런 자리다.

백척 큰 소나무 사시에 푸르렀다
빼어나 우뚝하기 쉬운 일이 아니거냐
팔방에 끝없는 바람 혼자 받고 섰구나 

- 외로운 소나무

 
유자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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