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333] 지리산 소금길
함양군 마천면의 지리산 벽소령. 해발 1300m의 벽소령을 겨울에 올라가니까 기온이 영하 10도를 가리킨다. 이렇게 가파르고 추운 벽소령 고갯길을 조선시대 소금 장수들은 어떻게 넘었단 말인가! ‘강호동양학’은 현장을 발로 밟아보고 고갯길을 넘어 보아야 진도가 나가는 분야이다. 지리산 남쪽의 피아골, 화개장터 쪽에서 올라온 장사꾼들이 삼정 마을을 거쳐 이 벽소령 고개까지 올라온다. 여기서부터 내려가면 지리산 북쪽의 함양군 마천, 남원의 운봉이 나온다. 지리산의 남북을 종단하던 조선의 소금길이다.
장사 품목은 소금뿐만이 아니었다. 건어물과 미역도 있었다. 바다에서 나오는 해산물은 서남해안에서 시작하여 배를 타고 하동 포구를 거쳐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왔다. 이 소금과 해산물을 실은 배들은 섬진강을 따라 화개, 피아골, 그리고 지금의 구례구역이 있는 위치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 당시의 물류 루트를 추적해 보면 소금과 건어물은 일단 피아골 앞에 하역한 것으로 보인다.
피아골에서부터 여러 개의 고갯길을 넘는다. 700m의 농평마을 지나서 외당재를 넘고 칠불사 앞을 통과하여 내당재를 넘는다. 내당재를 넘으면 의신사(義神寺)가 나온다. 의신사는 조선시대 승려들의 지하 비밀 조직이었던 당취(黨聚)들 본부 사찰이었다. 내당재, 외당재라는 지명 자체가 당취와의 관련을 암시한다. 아울러 이 소금길을 왕래하던 물류와 상단(商團)의 통제는 불교의 당취들이 관여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의신사 바로 앞의 고개인 내당재에서 올라가면 삼정마을이 있다. 삼정마을 근처에는 빨치산 대장 이현상이 총에 맞아 죽은 빗점골이 있다. 삼정마을에서 가파른 고갯길을 올라가면 벽소령이 나온다. ‘푸른 밤하늘 고개(碧霄嶺)’라는 이름의 벽소령은 밤에도 먹고살기 위해 등짐을 지고 이 고갯길을 넘어야만 했던 소금 장수들이 붙였던 이름이 아닌가 싶다. 벽소령에서 마천 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광암동과 하정 마을을 거쳐 마천에 도착할 수 있다. 지리산 북쪽의 산골 마을인 마천 쪽에서는 한지, 참나무 숯, 그리고 한약재인 당귀(當歸)를 소금과 교환하였다. 여자들 보약인 사물탕(四物湯)에 들어가는 당귀는 지리산 당귀를 최고 품질로 쳤다. 해발 1000m가 넘는 고산지대의 당귀가 가장 약효가 좋다. 운봉 쪽에서 나오는 콩도 소금 장수들이 구입했던 품목이었다. 지리산 소금길을 넘으면서 인생은 등짐을 가득 지고 고갯길을 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column'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데스크에서] 대만 허물려는 중국의 노래 (0) | 2022.02.08 |
---|---|
[윤희영의 News English] 다윈의 ‘진화론’은 사상 최악 표절 사기? (0) | 2022.02.08 |
[설날에 읽는 조용헌 살롱] 韓食의 세계화 (0) | 2022.02.03 |
[윤희영의 News English] ‘Quit cold turkey’라는 새해 결심의 뜻은? (0) | 2022.01.25 |
[조용헌 살롱] [1332] 미테랑의 점성술사 (0) | 2022.0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