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우의 미세한 풍경] 우리는 행복이 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두 팔 잃은 남성과 시각장애인 친구, 서로 도와 민둥산을 숲으로 바꿔
샴쌍둥이 남매 로리와 조지는 분리 수술 뿌리치고 “이대로 행복해”
‘장애를 이겨낸 사람들’ 수식은 진부… 위대한 불굴의 정신에 감동
중국 허베이성 시골에 사는 50대 남자 자원치는 세 살 때 감전 사고로 두 팔을 잃었다. 밝은 성격을 타고난 그는 장애인 예술단에서 발가락으로 붓글씨를 쓰며 살았다. 그가 15년 전 아픈 아버지를 돌보러 고향에 돌아왔을 때, 어릴 적 친구인 자하이샤는 1년 전 채석장에서 사고를 당해 두 눈을 잃은 상태였다. 아내와 어린 아들을 부양할 수 없게 된 하이샤는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죽음만 생각했다. 아내에게 자신을 떠나라고 종용할 정도였다.
그때 원치가 하이샤에게 말했다. 나는 두 팔 없이 50년을 살았다고.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의 눈과 팔이 되었다. 그들은 황무지 고향 산에 나무를 심어 숲을 가꾸기로 했다. 돈을 벌려는 게 아니라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자고 했다. 원치의 텅 빈 옷소매를 하이샤가 잡고 산에 올랐다. 하이샤가 묘목을 붙들고 있으면 원치가 얼굴과 어깨 사이에 삽자루를 끼워 흙을 메웠다. 다들 미친 짓이라고 했다. 첫해 사시나무 800그루를 심었는데 두 그루만 살아남았다. 그러기를 15년, 민둥산은 나무 1만 그루가 울창한 숲이 되었다.
이런 내용의 EBS 다큐멘터리 ‘나무와 두 남자’를 봤다. 몇 년 전 방영분의 재방송이었다. 나는 가늠할 수 없는 인간의 의지에 감탄한 나머지 경건해졌다. 압권은 두 사람이 국수를 끓여 먹는 장면이었다. 앞을 볼 수 없는 남자가 젓가락으로 냄비에서 국수를 건진다. 국수 가락이 미끄러져도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어 헛젓가락질을 한다. 보다 못한 팔 없는 남자가 말한다. “이리 줘 봐, 내가 할게.” 그가 발가락에 국자를 끼워 국수를 건진다. 눈 먼 남자는 그릇을 더듬어 국수를 먹고 팔 없는 남자는 고개를 숙여 먹는다. 하이샤는 말했다. “우리끼리 늘 하는 말이 있어요. ‘해법은 고난보다 많다. 해법은 늘 있다’는 거죠.”
이 다큐를 보면서 처음 든 생각은 ‘저런 사람들도 열심히 사는데 사지 멀쩡한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금세 이런 생각이 ‘장애는 열등한 것’이란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다. 우리는 누가 사고를 당하거나 병을 얻었다고 해서 그가 열등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장애는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나쁜 일이고 뒤처지는 것이며 부족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남산 산책로에 가면 혼자 나온 시각장애인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어떤 이는 점자 블록을 따라서 걷고 어떤 이는 흰 지팡이를 좌우로 흔들어 길턱을 두들기며 걷는다. 이들은 어디쯤 쉼터나 벤치가 있고 어디에 음수대가 있는지 정확히 안다. 처음엔 이들을 보고 누구 도와줄 사람이 없나, 혼자 어떻게 집으로 돌아가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몇 번 보고 나서는 이들의 산책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다는 걸 알게 됐다. 하루도 빠짐없이 산을 오르는 장애인과 1만보 걷기 결심을 사흘도 지키지 못하는 나, 어느 쪽이 더 행복한가.
로리 셰플과 조지 셰플은 이마가 맞붙어 태어난 미국의 샴쌍둥이 남매다. 이들은 분리 수술을 받으라는 주변의 권유를 뿌리치고 “이대로가 행복하다”며 머리가 붙은 채 60년을 살아왔다. 조지는 음악상을 수상한 컨트리 가수이며 로리는 조지가 무대에 설 때마다 커튼으로 자신의 모습을 가린 채 그를 응원했다. 두 사람은 (당연히) 한집에서 사는데 로리는 약혼자가 있었고 조지에겐 애완동물이 여럿 있을 만큼 서로 사생활을 존중한다.
하버드대 심리학과 대니얼 길버트 교수는 책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에서 “많은 사람이 샴쌍둥이로 사는 것은 불행하고 가치 없는 삶이므로 위험하더라도 분리 수술을 선택하는 것이 옳은 결정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쌍둥이 자신들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며 “그만큼 우리는 행복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또 “장애인이 장애를 없애기 위해 지불하겠다는 비용보다 장애가 없는 사람이 장애를 피하려고 내겠다는 비용이 훨씬 큰 법”이라며 “우리가 장애인의 행복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두 팔이 없는 남자와 두 눈이 안 보이는 남자가 나무를 심고 숲을 가꾼다. 한 남자는 그 푸르른 숲을 바라보며 웃고 다른 남자는 그 나무들을 안아보며 웃는다. 이들에게 ‘장애를 이겨낸 사람들’ 같은 수식은 너무 진부하다. 다만 어떻게든 내일은 오늘보다 행복해지겠다는 인간의 의지, 그 위대한 불굴의 정신을 이들에게서 보았다. 더뎌도 좋다. 한 발짝만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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