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우군은 원래 맑고 진솔한 사람, 속세를 벗어난 듯 소탈하고 대범했지.
산음 땅에서 만난 어느 도사가, 거위 좋아하는 이분을 몹시도 반겨주었지.
흰 비단에 일필휘지 ‘도덕경’을 써내려가니, 정교하고 오묘한 그 필체는 입신의 경지.
글씨 써주고 얻은 거위를 조롱에 담아 떠날 때, 주인과는 작별인사조차 하지 못했지.
右軍本淸眞
瀟灑出風塵
山陰遇羽客
愛此好鵝賓
掃素寫道經
筆精妙入神
書罷籠鵝去
何曾別主人
―‘왕우군(王右軍)’·이백(李白·701∼762)
왕우군은 곧 왕희지(王羲之), ‘춘향전’에서 이도령이 과거시험 치를 때 ‘왕희지 필법으로 조맹부체를 받아 일필휘지’했다고 묘사한 그 명필이다. 생전의 직함 우군장군(右軍將軍)에서 따온 호칭이다. 그는 거위를 무척 좋아했는데 희고 깨끗한 깃털을 고결한 선비의 표상으로 여겼다고도 하고, 또 거위의 몸놀림에서 서예의 운필(運筆) 기교를 익힐 수 있었다고도 하는데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다.
왕희지는 한 도사가 거위를 기른다는 소릴 듣고 그걸 사려고 찾아갔다. 도사가 ‘도덕경’을 써주면 거위를 거저 주겠노라고 하자 그는 흔쾌히 응했다. 거위를 얻은 그의 달뜬 마음을 시인은 ‘주인과는 작별인사조차 하지 못한’ 채 자리를 떴으리라 상상한다.
왕희지의 이 거위 사랑은 정사인 ‘진서(晉書)’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백의 시가 나오면서 더 널리 알려졌다. 이 글씨를 두고 시인은 ‘정교하고 오묘한 그 필체는 입신의 경지’라 극찬할 만큼 서성(書聖) 왕희지에 매료된 듯하다.
왕희지가 머물던 곳곳에 이른바 ‘묵지’(墨池·먹물 빛 연못)가 전설처럼 남아 있다. 서예를 연마하면서 붓과 벼루를 씻느라 못물이 시커멓게 변할 정도였다는 것이다. 수백 년 후 당 류언사(劉言史)는 ‘지금도 못물엔 남은 먹물이 배어 있어, 여느 샘물과는 빛깔이 다르다네’라 과장하기도 했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
右軍本淸眞(우군본청진)
우군은 본디 깨끗하고 참된 분이어서
瀟洒在風塵(소쇄재풍진)
거리낌이 없이 속세에 있었네
山陰遇羽客(산음우우객)
산음 땅에서 도사를 만났는데
愛此好鵝賓(애차호아빈)
거위를 좋아하는 이 손과 친해졌네
掃素寫道經(소소사도경)
비단을 가다듬어 도덕경을 베끼니
筆精妙入神(필정묘입신)
필법이 신묘하여 신의 경지에 든 듯하네
書罷籠鵝去(서파롱아거)
쓰기를 마치고 거위를 대바구니에 넣어서 떠나면서
何曾別主人(하증별주인)
어찌 주인에게 까지 작별 인사를 하겠냐고 하네
>王右軍(왕우군) : 동진의 명필가 왕희지이다
>瀟洒(소쇄) : 깨끗하고 아무 거리낌 없는 모양
>山陰(산음) : 회계군에 있는 마을로 여기 있는 난정에서 난정집서를 지었다
>羽客(우객) : 새 깃으로 만든 옷을 입은 신선을 의미함. 왕희지는 신선이 기르는 거위를 탐내어 도덕경을 베껴주고 거위를 받는다.
>掃素(소소) : 글씨를 쓰기 전에 글씨 쓸 비단을 손으로 잘 펴는 것
>道經(도경) : 상하로 나뉜 도덕경 상권을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전체를 가리킴
>李白(이백 701~762) :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이며 자는 태백(太白)으로 두보와 함께 李杜로 병칭되는 중국 최대의 시인으로 詩仙으로 불린다.
이백에게서 술은 문학의 원천이 되었고 또 술에 취해 달을 잡으려다 강에 빠져 죽었다는 설이 있다.
'이준식의 한시한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바람의 경이[이준식의 한시 한 수]〈152〉 (0) | 2022.03.18 |
---|---|
봄꽃을 기다리며[이준식의 한시 한 수]〈151〉 (0) | 2022.03.11 |
시인의 인간미[이준식의 한시 한 수]〈149〉 (0) | 2022.02.25 |
山園小梅 / 林逋 (0) | 2022.02.18 |
목숨 건 직언[이준식의 한시 한 수]〈146〉 (0) | 2022.0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