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말 지지율 미스터리
입력 2022.03.08 00:27

최민우 정치에디터
한국갤럽이 4일 발표한 문재인 대통령의 직무수행 조사에서 “잘하고 있다”란 응답은 45%였다. 대선 전 마지막 지지율 조사에서 40% 중반대를 기록한 것이다. 이는 과거 대통령과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우월한 수치다. 한국갤럽이 여태 실시했던 역대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 마지막 분기(5년 차 4분기) 직무 수행 긍정률은 김영삼 6%, 김대중 24%, 노무현 27%, 이명박 24%였다. (임기를 다 못 채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직전 지지율은 5%였다) ‘87년 체제’의 산물인 5년 단임제에서 대통령 지지율의 상고하저(上高下低)는 불변의 법칙이었다. 여당에서 쫓겨나지만 않으면 다행일 정도로 집권 후반기엔 찬밥 신세였다.
이같은 원리가 문 대통령에 의해서 깨지게 된 것이다. 문 대통령도 지지율 80%를 웃도는 취임 초에 비하면 하향곡선을 그린 게 사실이지만, 과거의 낙폭과는 현저히 달랐다. 임기 5년간 가장 낮은 지지율이 35%(한국갤럽 5년 차 1분기)에 불과했고, 대통령 중임제라면 충분히 연임도 가능한 지지율 추이를 보여주었다. 임기말 지지율이 폭락하면서 퇴임 후 불행한 대통령으로 기록되곤 한 게 제왕적 대통령제의 한계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로써 대한민국도 그토록 염원하던 성공한 퇴임 대통령을 배출할 수 있게 된 것일까.
선거운동 같은 국정 운영 덕일까
냉엄한 역사적 평가는 이제부터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 영상회의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하지만 무작정 환호하기엔 찜찜한 구석이 한둘이 아니다. 우선 현직 대통령 지지율이 40%를 웃돌고 있음에도 정권교체 여론은 정권연장보다 꾸준히 10%포인트 이상 우위다. 야당 대선 후보가 문 대통령을 비난하는 건 정치구도상 불가피하지만, 여당 후보 역시 “잘못했다, 사과한다”며 손절 모드다. 공과를 구체적으로 따져봐도 썩 후한 점수를 주긴 쉽지 않다. 부동산 정책은 여야 공히 최악이라는 평가다. 취임 초부터 심혈을 기울인 남북 긴장완화는 북한이 올해 들어서만 9번째 미사일을 쏘면서 사실상 원점으로 회귀했다. 소득주도성장과 청와대 일자리 상황판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졌고, 숱한 반대에도 탈원전을 줄곧 고집하던 문 대통령은 지난달 느닷없이 “향후 60여 년 원전을 주력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해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그나마 자랑이라던 ‘K방역’마저 오미크론 확진자가 20만명을 넘는 등 일일 확진자 수 세계 최다 수준을 기록하며 퇴색했다. 적폐청산? 과연 정적 제거 이상의 의미를 둘 수 있을까. 검찰개혁? 현재의 공수처를 보면 ‘개혁’이란 단어를 붙이기엔 낯뜨거워진다. 그런데 왜 지지율은 40%를 넘길까.
해석은 다양하다. 지지층은 첫 번째로 문 대통령 친인척·측근의 비리가 없다는 점을 내세운다. 몇 가지 잡음이 있었으나 실제 대형 스캔들은 터지지 않았다. 현재 여야 후보보다 도덕적·정서적 비교우위가 호감도를 지속하는 데 작용했다는 평가도 있다. 격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안정감을 주었으며 일벌레 같은 면모를 보여주었다는 점도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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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정반대의 해석도 적지 않다. 임기 내내 진영 갈라치기로 지지층 이탈을 최소화했다. 울산 선거개입, 월성 원전 경제성 조작, 라임·옵티머스 사건에서 보이듯 측근 비리가 사라진 게 아니라 측근 비리를 수사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벤트 정치’로 이미지만 좋게 만들려 했다 등등.
그중에서도 가장 신랄한 비판은 ‘문 대통령은 국정을 운영하지 않았기에 지지율 하락이 없다’는 주장이다. 국가의 앞날을 따지다 보면 고통이 수반되고 지지층 반발이 뒤따르는 경우도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라크 파병과 한미 FTA, 박근혜 전 대통령의 연금 개혁 추진 등이 그 예다. 비록 욕을 먹더라도 과업을 추진해야 하는 게 지도자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복잡한 현안엔 좀체 나서지 않았다. 똥물 튀길 일엔 얼씬도 하지 않았다는 거다. 대신 독립운동가 유골 송환이나 첨단 국방 무기 시현 같은 폼나는 일에는 빠짐없이 등장했다. 코로나 2년간 문 대통령은 “터널 끝이 보인다”며 속삭였지만, 정작 백신 수급 등으로 문제가 터지면 아랫사람이 사과해야 했다. 언제나 아름다운 얘기, 멋진 장면은 문 대통령의 몫이었다. 결국 문재인 집권 5년은 선거 캠페인 같은 국정 운영으로 점철된 5년이었다.
이같은 쓴소리가 문 대통령으로선 ‘엄연히 수치라는 객관적 사실이 있는데 왜 딴죽만 거냐’고 할지 모르겠다. 실제 개헌이 진행돼 권력구조가 개편되면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 사상 최고 지지율 대통령으로 영구히 기록될 수 있다. 하지만 기록이 기억으로 박제되는 건 아니다. 저주받은 걸작이 뒤늦게 조명되듯, 동시대의 인기가 전부는 아니다. 물러나는 문 대통령은 이제 지지율보다 훨씬 냉엄한 역사적 평가 앞에 직면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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