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살리려는 검수완박인가
입력 2022.04.12 00:45
최민우 정치에디터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탄생했기에 검찰공화국이 될 수 있다는 우려, 일견 타당하다. 게다가 윤석열 당선인은 수사지휘권 폐지, 예산권 보장 등 검찰권을 강화할 듯한 공약을 내걸지 않았나. 다만 지금 민주당이 떠드는 것처럼 검찰이 무소불위 기구라는 건 허구다. 이미 검찰 권력은 문재인 정부에서 크게 쪼그라들었다. 3급 이상 고위공직자 수사는 공수처 몫이고,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일반 형사사건에 대한 검찰의 관여도 제한적이다. 검찰이 현재 직접 수사할 수 있는 건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뿐이다. 그런데 그 6대 범죄마저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신설해 넘기고, 검찰은 아예 수사 자체를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다.
2020년 7월 당시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와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처럼회' 회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웃고 있다. [페이스북 캡처]
검수완박은 당초 2020년 말부터 본격화됐다.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 의한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가 사실상 무산된 직후다. 검수완박 법안을 주도한 이들은 강경 초선그룹 ‘처럼회’인데, 이 중엔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피의자 황운하 의원과 허위 인턴증명서 사건 피의자 최강욱 의원도 있다. 과거 위정자는 범죄 혐의에 휩싸이면 이를 숨기고 변명하거나 꼬리를 자르려 하는 데 급급했지만, 이들은 외려 고개를 뻣뻣이 들고 ”정치 탄압“이라며 국가 사정기관(검찰)을 아예 없애려는 대담함을 보인다. 하지만 그토록 밀어붙인 검수완박도 지난해 3월 윤석열 총장이 사퇴하자 시들해졌다.
정권이 바뀌자 1년여 만에 검수완박이 또 불붙었다. 권력 바람에 재빠르게 눕는 검경이 김혜경씨 법인카드 유용, 원전 비리 수사에 제 속도를 낸 게 명분을 제공했다. 특히 민주당에서도 '친명계'는 새 정부가 들어서서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기 전(5월 9일)까지를 검수완박 법안 처리의 마지막 시기로 간주했다.
지난해 10월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열린민주당 유튜브채널에서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오른쪽) 등과 대담을 했다. 당시 열린민주당은 '검수완박' 기조를 강조했다. [유튜브캡처]
다만 변수가 생겼다. 여태 ‘검수완박=중수청 신설’은 공식이었다. 검찰에서 빼앗은 수사권을 어디로는 넘겨야 하지 않나. 그런데 중수청장은 새로 들어서는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하게 된다. 이를 두고 조응천 민주당 비대위원은 ”(중수청은) 윤석열 정부에 사나운 사냥개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파출소 피하려다 경찰서 만난 꼴“이라고 했다. 이에 중수청을 아예 만들지 말자는 얘기가 거론되면서 ‘검찰 수사권이 몽땅 경찰로 넘어가 경찰만 비대해진다’는 지적이 또 나왔다.
그러자 경찰대 출신의 황운하 의원은 ”검찰 수사권을 폐지한다고 해서 지금도 일에 치이는 경찰이 이 부분을 감당할 수 없다. 그냥 증발한다“며 ”시급한 검찰 직접수사권 근거 조항부터 삭제하자“고 했다. 검찰 수사 와해가 급하니 중수청 설치는 뒤로 미루자는 거다. ”국가 수사 총량은 줄어든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더하면서 부패, 선거 사범 등 검찰이 해야 하는 수사가 공백기를 가져도 상관없다는 거다. 자신을 향한 칼끝을 무디게 하려다 보니 이제는 아예 국가 수사력을 무너뜨리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2020년 4월 당시 더불어민주당 황운하 당선자(오른쪽)와 열린민주당 최강욱 당선자가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21대 초선 국회의원 의정연찬회에 참석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종택 기자
지난해 만들어진 공수처는 1년간 단 한 건의 사건만 처리했다.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의 평균 사건 처리 기간은 64.2일로 8.6일 증가했다. 장애인권법센터 김예원 변호사는 최근 인터뷰에서 ”1년 가깝도록 송치도 안 하고, 어떤 사건은 여덟 번이나 이송만 한다“며 ”10년 넘게 형사 피해자를 대리했지만 요즘 같은 상황은 처음“이라고 토로했다. 현 정부의 ‘검찰 개혁’이 오히려 서민 피해만 더 크게 한 사례는 차고도 넘친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검수완박’을 밀어붙이는 것은 ‘조국 사태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해서다. 강성 지지층에게만 둘러싸여 해오던 방식을 따라 하는 일종의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y)이다. 하지만 2년 반에 걸친 ‘윤석열 죽이기’의 결과물은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검찰 죽이기의 종착지가 어디일지는 현재로선 가늠하기 어렵다. 다만 스스로 늪으로 빠져들어 가는 172석 민주당을 보며 대다수 국민은 혀를 끌끌 찰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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