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읽기

종은 그대를 위하여 울린다

bindol 2022. 4. 12. 04:46

종은 그대를 위하여 울린다

중앙일보

입력 2022.04.12 00:34

업데이트 2022.04.12 01:06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누구든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은 아니다./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양의 일부./만일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유럽은 그만큼 작아지며, 만일 모래톱이 그리되어도 마찬가지다./어느 사람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왜냐하면 나는 인류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 알고자 사람을 보내지 말라./종은 그대를 위해 울리므로.’

시인이며 목사인 존 던(1572∼1631)이 살던 영국,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갔습니다. 존 던이 살던 마을에서도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한 사람이 숨을 멈출 때마다 교회의 종을 울리게 했다고 합니다. 종소리가 들릴 때마다 이렇게 궁금해했다고 하지요. “종이 울렸다. 누군가가 죽었나 보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
우크라이나를 돕는 국제군단
푸틴의 인간도살 즉각 멈춰야

그런데 존 던마저 전염병에 걸렸습니다. 몹시 앓으며 병석에 누워 있는데 종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때 존 던은 느꼈습니다. 저 종의 울림이 바로 자신을 위한 것임을···. 그리고 저 위대한 시를 짓게 되었습니다. 시의 제목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소설 제목으로 쓰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이 소설은 1936년 발발한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당시 파시즘 성향의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합법적인 선거로 집권한 사회주의 세력과 내전을 벌이자 세계 각국의 노동자와 지식인들이 정부군을 돕기 위한 ‘국제여단’에 소속돼 전투를 치렀습니다. 헤밍웨이와 조지 오웰 등 당대의 유명 작가들도 국제여단에 지원했는데, 지원병 규모가 4만∼5만 명에 달했습니다.

그런데 스페인 내전 때의 외국인 참전과 흡사한 양상이 우크라이나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침공과 잔혹한 행위에 분노한 세계인들이 전쟁 중의 우크라이나로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세계 수호에 동참하고 싶다면 우크라이나에 와서 러시아 전범과 맞서 싸워 달라”고 호소한 직후 ‘국제군단(International legion)’이 창설됐습니다. 전 세계 50여 개국에서 의용군을 자처한 이들이 소규모 또는 수백 명 단위로 무리 지어 우크라이나 국경으로 몰려들어 2만여 명이 참전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조지아의 전 국방장관과 전직 특수부대원들이 소총으로 러시아 무장 차량을 무력화시켰는가 하면, 전투 병력이 수도 키이우 방어에 투입됐습니다.

국제군단에는 전투 경험이 없는 대학생이나 직장인도 포함돼 있습니다. 구급대원이나 간호사 등 의료진들의 우크라이나 행도 줄을 잇고 있습니다. 의용군의 대부분은 유럽인이지만 미국과 캐나다, 일본인들도 참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튜브 예능 ‘가짜사나이’로 유명해진 이근 전 해군특수전전단(UDT/SEAL) 대위 등이 정부의 불허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에 들어갔지요.

국제군단에 소속된 의용군은 기본적으로 우크라이나 장교의 지시를 받습니다. 우크라이나 군복과 방탄모, AK소총 등이 지급됐다고 합니다. 참전한 외국인들에게는 우크라이나 군인들과 마찬가지로 급여가 나가며, 시민권까지 발급하겠다고 우크라이나 정부는 밝혔습니다. 미국과 EU가 3차 세계대전으로의 확전을 우려해 파병을 망설이고 있는 동안에 민간인들이 타국의 전선에 뛰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스페인 내전은 국제여단의 참전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프랑코 쿠데타군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다를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경향을 힘으로 막으려는 러시아의 침공과 민간인 학살은 세계인의 분노를 불러왔습니다. 러시아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쫓겨났으며, 경제 제재, 외교관 추방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무기 지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인류의 이성을 모욕하는 야만적 인간 도살 행위를 멈추라는 세계인의 함성 속에 러시아는 고립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해외에 있는 우크라이나인들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 돌아가는 현상도 늘고 있습니다. 재외 우크라이나인 30여만 명이 귀국해 총을 잡고 있는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인들이 가장 애송하는 타라스 셰우첸코(1814∼1861)의 시 ‘유언’을 소개합니다.

‘나 죽거든 부디/그리운 우크라이나/넓은 벌판에/나를 묻어주오/그 무덤 위에 누워/끝없이 펼쳐진 고향의 전원과/드네프르 강기슭/험한 벼랑을 바라보며/거친 파도 소리 듣고 싶네/적들의 검은 피/우크라이나 들에서/파도에 실려/푸른 바다로 떠나면/나 벌판을 지나/산언덕을 지나/하늘나라로 올라/신께 감사드리겠네/내 비록 신을 알지 못하나,/이 몸을 땅에 묻거든/그대들이여/떨치고 일어나/예속의 사슬을 끊어 버려라.’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마음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래된 장소가 주는 슬픔  (0) 2022.05.10
시끄러워야 건강하다  (0) 2022.04.14
이별의 한 방식  (0) 2022.03.08
사람을 고르는 기준  (0) 2022.03.02
꽃 피고 지는 것도 보시게  (0) 2022.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