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장소가 주는 슬픔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
파주 심학산은 고도 194m의 야트막한 산으로, 몇 년 전만 해도 주변에 출판단지 외엔 주택 몇 채만 드문드문 있었다. 멀리 돌아 걸어도 1시간 반밖에 안 걸리는 완만한 산세의 주변을 지배하는 분위기는 ‘고요’였다. 이곳에 터 잡은 사람들은 이른 어둠과 정적에서 기쁨을 느꼈다. 하지만 ‘그에게 불가능은 없다’고 소문난 개발업자로 인해 마을은 한시바삐 모습을 바꿨고, 논밭이 다 주택부지로 다져지는 데는 짧은 시간으로 충분했다.
지금 이 동네는 위태로워 보인다. 산과 땅이 집 짓고 음식 팔려는 사람들로 붐벼 겨울철마다 오는 기러기 서식지는 이제 몇백㎡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거 이곳을 산책할 때면 흑염소에게 꼴을 먹였건만 염소들은 어느 날 농부와 함께 사라졌다. 산 초입에서 가끔 마주쳤던 고라니는 몇 년째 안 보이고, 늦봄의 개구리도 자취를 감췄다. 모두 10년이 안 된 사이의 일이다.
나무·새·벌레 등에 재앙의 시간
인간은 과연 무사할 수 있을까
똥 냄새, 풀 냄새, 흙냄새를 맡으며 10년 이상 한 장소에 머문 사람이 목격하게 되는 것은 대부분 상처적 풍경이다. 제거되는 것은 동식물이고, 대체하는 것은 건물과 도로지만, 둘은 등가물이 아니다. 산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지켜보는 사람은 여러 종류의 죽음을 목격하다가 두려워 침묵 속에 떠나는 반면, 새로 정착하는 이들은 땅값 상승에 대한 낙관 때문인지 표정이 환하다. 대개 외지에서 오는 사람들의 상상력은 풍부하고 추진력은 세다. 건물의 토대를 쌓는 이들이 치열하게 행동해 나무와 풀들도 땅속에서 더 열심히 꿈틀대지만 결국 후자는 기계에 의해 무너진다. 이런 광경을 보면서 주민으로서 차곡차곡 쌓게 된 감정은 ‘분노’보다는 ‘체념’이다. 체념이 쌓여 이사를 결정했고, 지난 한 달간 주변을 산책하며 나름 애도와 추억의 시간을 가졌다.
4월 11일엔 꽃이 한꺼번에 폭발하듯 피었고 나무들의 이파리도 일제히 돋았다. 14일엔 주택단지 화단에서 놀던 두 아이 중 여자애가 남자애에게 호스로 물 뿌리는 장난을 쳤다. 흠뻑 젖은 남자애가 달려들어 호스를 빼앗고 여자애를 넘어뜨리며 마구 때렸다. 여자애는 땅에 머리를 부딪쳐 울고, 남자애는 분이 안 풀렸던지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나는 뛰어가 여자애 머리를 쓰다듬었는데, 코로나 시절에 타인의 몸에 손댈 수 있다는 것에 환희를 느꼈다. 다만 그 애에게서 살아가며 마주칠 폭력과 앞날의 눈물이 읽혀 마음이 불편했다.
15일 저녁엔 보름달이 마치 형광등을 켠 듯 환하게 떴다. 화단에 있던 아이가 “오늘 추석도 아닌데 왜 보름달이 떴지?”라고 물었다. 달의 공전주기를 아직 모르는 이 애와도 곧 작별이다. 16일엔 길가의 쑥을 캤다. 8년 전 이날에도 쑥을 뜯었다. 쌀가루를 섞어 쑥떡을 만들어서는 직원들에게 나눠주던 중 세월호 뉴스를 들었다. 매년 이맘때 세월호를 떠올리는 것은 쑥과 함께다. 17일엔 산 중턱에 포클레인이 파놓은 헐벗은 땅을 보았다. 내가 더 예민하게 생명에 귀 기울일 줄 알았다면 땅들의 울음소리를 들었을지 모른다. 그 울음은 시인 메리 루플의 단어를 빌리자면 ‘검은빛 슬픔’ 같은 것이다. 이는 ‘잿더미’의 슬픔이자 ‘갈퀴의 슬픔’이다.
지금 이곳은 다들 소란스럽게 영역 표시를 하는 중이다. 18일 회사 뒤편 땅에 누가 말뚝 같은 것을 박고 갔다. 자기네 땅으로 넘어온 나무들은 제거하겠다는 통보가 날아오고, 여기저기서 다들 나무를 베어내고 있다. 도로가 계속 생겨 소음과 자동차로부터 자신의 생활반경을 지키려는 이들도 똑같이 민원 제기로 맞선다. 생활도로 중앙분리대에 놓여 있던 화분들이 속도 내는 데 방해된다는 민원으로 철거 조치가 내려진 지는 이미 오래고 화분들은 쓰레기처럼 치워져 그늘만 받고 있다.
인간은 과연 무사할 수 있을까를 이곳에서 매일 생각한다. 동식물에게 재앙과도 같은 날들이 주어졌고, 이를 되돌이키기는 어렵다. 이사를 며칠 앞둔 나는 이곳을 너무 늦게 떠난다는 후회를 한다. ‘여기 많이 변했다. 좋아졌다’는 말은 결코 공감할 수 없는 문장이다. 이 동네에는 과거가 없고 오로지 현재나 근미래만 있다. 게걸스러움이 지배하는 산 주변에서 시간의 폭을 좁게 사유하는 이들의 손에는 쥐어지는 것이 많다. 우리는 대체로 보이지 않는 것은 보지 못하며, 사계절은 앞으로도 같은 풍경을 만들어낼 거라 생각한다.
10년 전 이곳에선 시골에 산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이젠 도시보다 더 급하게 탐욕스러워지는 여기서 수치심을 느낀다. 지금 이곳에 없는 것은 나무, 새, 벌레, 초록빛 희망이고, 이곳에 새로 들어선 것은 도로, 담장, 집, 회색빛 낙관이다.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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