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의 비밀] 다름과 같음의 공존(共存)
입력 2022.04.23 00:24
한자의 비밀
동아시아 지역에서 한자 사용의 역사가 길었던 만큼 다양한 문화적 배경과 역사 속에서 다양한 함의를 담은 어휘가 생성, 변용돼 사용되고 있다.
우리말 어휘 중에도 우리가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한자를 변용해 만들어진 게 많다. ‘초밥(醋밥)·온돌(溫突, 突은 우리말 ’돌‘의 음차 표기)’ 등은 고유어와 한자가 결합한 어휘고, ‘깡패(gang牌)·깡통(can桶)’ 등은 한자와 영어가 결합한 어휘다. 또 ‘각광(脚光)·연미복(燕尾服)’과 같이 외래어를 번역한 어휘도 있고, ‘도대체(都大體)·무려(無慮)’와 같이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우리말로 귀화돼 한자가 결합된 형태인지조차 알 수 없는 말도 있다. 특수한 역사적 배경 아래 만들어진 ‘수라(水剌)·개판오분전(開飯五分前)’이나 다른 나라와 다르게 변용한 邑面洞里(읍·면·동·리) 같은 행정단위도 있다.
시선을 우리말에서 한자문화권 전체로 확대해 보면, 나라별로 한자가 훨씬 더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중국 고전에서 유래한 말이지만 ‘사회·경제’와 같이 다른 의미로 변용된 경우도 있고, 우리가 쓰는 ‘점심(點心)·노파(老婆)’ 같은 어휘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다른 의미로 쓰인다. 그런가 하면, airport를 공항(空港, 한국·일본)과 기장(機場, 중국)으로, train을 기차(汽車, 한국/일본) 혹은 화차(火車, 중국) 등으로 달리 쓰거나 구분해서 쓴다. ‘섭씨(攝氏)·화씨(華氏)’ 같은 과학 용어나 ‘방정식(方程式)·분수(分數)’ 같은 수학 용어, ‘책상(冊床)·교실(敎室)·도로(道路)’ 등과 같은 일상어는 한·중·일이 모두 동일한 형태와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한자의 사용은 자유롭지 않은 듯하나 자유롭고, 어휘의 생성과 변용은 고정된 듯 보이나 고정돼 있지 않다.
언어가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도구라고 본다면, 다양한 어휘의 생성과 변용을 깊이 있게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모든 존재가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배우게 된다.
다양한 것이 뒤섞여 공존하는 세상, 그것이 어휘의 세계인 동시에 우리의 세계이다. 세상은 자아와 타자, 시와 비, 흑과 백이라는 이분법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다양함 속에 전체를 조망하고 포용하는 인식에서 세계의 조화로움을 찾을 수 있다. ‘틀리다’가 아닌 ‘다르다’를 인정하는 세상, 그리고 그 변화의 원인과 과정을 살펴 현상 속에서 진실을 찾으려는 것이 우리가 하는 일인 셈이다.
허철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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