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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 빚만 남긴 에너지 정책 5년

bindol 2022. 4. 26. 05:17

[동서남북] 빚만 남긴 에너지 정책 5년

한전, 올해 20조원대 적자 낼 듯… 유류세 인하에 6조6000억원 써
해선 안될 일만 하고, 할일은 미뤄 “5년으로 끝난 건 불행 중 다행”

입력 2022.04.26 03:00
 
 

최근 만난 대기업 에너지 계열사 임원은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두고 “빚만 남긴 5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나마 5년으로 끝난 게 불행 중 다행”이라고 했다.

3월 2일 오전 전남 나주시 빛가람동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KENTECH·켄텍) 다목적 광장에서 입학식·비전선포식이 열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영상 축사를 하고 있다.이날 첫 신입생을 맞이한 한국에너지공과대학은 세계 최초의 에너지 특화 연구·창업 중심 대학으로 학부 400명(학년당 100명), 대학원생 600명 규모의 소수 정예대학으로 운영된다 2022.03.02./뉴시스

문 대통령은 5년 임기 동안 에너지 정책을 추진하는 데만큼은 운이 좋았다. 탈원전한다면서 멀쩡한 월성 1호기를 폐쇄하고, 정비를 핑계로 한빛 4호기를 1848일 세워놓고, 신규 원전 가동을 줄줄이 미뤄도, 오락가락 태양광·풍력을 우후죽순 늘려도 전력 위기를 겪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때 전력 공급 예비율이 10% 미만으로 떨어진 날은 145일이었다. 2013년 8월엔 네 차례 5%대를 기록하며 위기가 있었다. 문 정부 때 10% 미만인 날은 14일에 불과했다. 공급 예비율이 가장 낮은 날은 2019년 8월 6.7%였다. 문 정부가 잘해서가 아니었다. 2011년 겪은 블랙아웃 탓에 발전 설비를 크게 늘려 놓은 전(前) 정부 덕이었다.

최근 유가가 100달러를 넘나들지만 문 정부 5년 동안 기름 값도 쌌다. 이명박 정부 때 서부텍스산원유(WTI) 평균 가격은 86.2달러, 박 정부 때는 68.2달러였다. 문 정부 때는 58.9달러였다. 이런 환경에서 문 정부는 해선 안 될 일은 밀어붙이고, 굳이 할 필요 없는 일로 생색을 내고, 꼭 해야 할 일은 외면하면서 임기 5년을 다 썼다.

문 정부는 2020년 말 전기요금에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했다. 저유가에 전기요금을 내려 탈원전하면 전기요금 오른다는 비판을 무마하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1년 반 동안 한 번 내리고, 한 번 올린 게 끝이었다. 유가 폭등에도 물가 핑계를 대며 연료비 연동제를 사문화했다. 그래서 우리나라 가정용 전기요금은 KWh(킬로와트시)당 0.103달러로 147국 중 62번째로 싸졌다. 85국이 우리보다 전기요금이 비싸다. 전기요금 세계 2~3위 덴마크와 독일은 0.3달러가 넘고, 벨기에·스페인·포르투갈·일본은 우리의 배도 더 된다. 미국조차 우리보다 50% 넘게 비싸다. 남은 건 빚더미 한전이다. 작년 국내 상장사 역대 최대인 6조원 가까운 영업손실을 내더니 올해는 20조원을 훨씬 넘길 태세다. 5년 동안 부채는 34조원 늘었다.

 

역대 정부는 네 차례 유류세를 내렸다. 문 정부 때만 두 번이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 유류세를 10% 내렸는데 이때 국제 유가는 평균 101달러였다. 2018년 문 정부가 15% 내렸을 때 국제유가는 56달러였다. 작년 11월엔 유류세를 20% 내렸고, 5월부터는 30%로 확대한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휘발유는 여섯째, 경유는 넷째로 싸다. 문 정부 때 두 차례 유류세를 내린 기간에 수송용 휘발유·경유 소비량으로 추정해 보니 4조7600억원 세금이 들었다. 7월 말까지 1조8000억원을 더 써야 한다. 유류세 인하는 대중교통보다 자가용을 이용하고 고급·대형차를 모는 부유층이 더 큰 혜택을 받는다.

전기·휘발유 값을 내려 탄소 배출을 늘린 문 정부는 굳이 앞장서 하지 않아도 될 무리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내놨다. 저유가 때 해야 할 해외 자원 개발은 아예 싹을 잘라버렸고, 한시가 급한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는 다음 정부로 떠넘겼다.

빚만 잔뜩 떠안은 윤석열 당선인이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100달러를 오르내리는 고유가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고, 탈원전을 백지화한다 해도 임기 내 신규 원전 완공이나 허가 만료되는 원전 재가동도 힘들다. 광물 자원 전쟁에 대응할 마땅한 무기도 없고, 전기요금 폭탄은 곧 터진다. 그렇다고 새 정부가 임기 내에 성과를 내려 조급해선 안 된다. 새 정부는 지금부터 다음 정부, 그다음 정부까지 이어질 에너지 정책을 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