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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대통령, 여전히 남는 의문들

bindol 2022. 5. 2. 05:30

떠나는 대통령, 여전히 남는 의문들

중앙일보

입력 2022.05.02 00:29

장세정 논설위원

문재인 정부 5년이 마침내 저물고 있다. 오는 9일 오후 6시를 전후해 문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나면 '전직 대통령' 신분이 된다. 10일 0시부터 윤석열 대통령 시대가 열린다. 여론조사 기준으로 50% 이상이 정권 교체를 학수고대했다니 그런 국민의 눈에 지난 5년은 일각여삼추(一刻如三秋)란 말처럼 시간이 더디게 흘렀을 듯하다.

 반면 5년 만에 정권을 잃은 정치 진영의 상실감은 형언하기 어려울 듯하다. "(문 정부의) 정책이 뿌리내리기 위해선 재집권이 중요하다. 정책이 뿌리내리려면 적어도 10~20년이 걸린다." 2018년 8월 퇴임 기자회견에서 '20년 집권론'을 역설한 이해찬 당시 민주당 대표는 지금 어떤 회한과 감상에 젖어 있을지 궁금하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3월 28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만찬 회동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오는 9일 오후 문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나면 다음날 0시부터 윤석열 대통령 시대가 열린다. [뉴시스]

 1987년 직선제 부활 이후 우파와 좌파의 10년 주기 정권 교체설이 이번에 처음으로 깨졌다. 박지원 국정원장은 김대중 정부 시절 권불십년(權不十年·10년 가는 권세 없다)을 "정권을 잡으면 적어도 10년은 간다"로 독특하게 해석했는데, 어떤 창의적인 해석을 또 내놓을지 기대된다.
 "나는 링 위에 오른 적이 없다"고 강변했지만 아마도 문 대통령은 누구보다 대선 패배를 아프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싶다. 국정을 홍보해온 KTV와 청와대가 공동 제작한 4부작 다큐멘터리 ‘문재인 정부 5년의 기록,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보니 정권 재창출 실패 이후 문 대통령의 불편함과 초조함이 읽혔다. JTBC '대담-문재인의 5년' 프로그램까지 십분 활용해 문 대통령은 전례 없이 강한 어조로 자신의 치적을 격정적으로 토로했는데, 자화자찬을 넘어 견강부회가 많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JTBC 대담 프로그램 '문재인의 5년'에 출연해 지난 5년간 안보 경제 코로나19 사태 등 수많은 위기 상황에서 성공적으로 대처했다며 자화자찬했다. [JTBC 캡처]

 자랑만 넘치고 반성이 빠지니 공허했다. 대담을 보면서 도저히 수긍할 수 없는 문 대통령의 일방적 주장에 놀랐다. 소통을 잘했다는 문 대통령의 억지였다. 하지만 기자회견 횟수 등을 비교하면 과거 불통 정부와 별반 다르지 않은 '불통 대통령'이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정치적으로 불리한 이슈가 터지면 뒤로 숨기에 급급했다. 그런데도 인제 와서 느닷없이 소통 잘한 대통령이라며 '문비어천가'를 틀어댔다. 소통 부족 책임을 코로나19 탓으로 돌린 대목이 압권이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 퇴임이 임박한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많이 남아 있다. 반쪽의 진실만 담은 어용 사초(史草)가 아니라 정확한 진실을 위한 '역사의 반론' 차원에서 마지막으로 질문 몇 가지를 기록으로 남긴다.
 첫째, 문 대통령은 진정으로 가난한 서민들을 위해 일하셨나? 정책 실패로 부동산값이 폭등해 무주택자와 세입자가 고통받았는데도 우리나라 부동산 가격 상승이 가장 작은 편"이라면서 저금리 탓을 했다. 심지어 코로나와 '영끌' 때문이라는 변명을 늘어놓았는데, 어떤 국민이 이런 주장에 공감할까.
 둘째, 문 대통령은 진정으로 나라와 청년의 미래를 위한 해법을 고민하셨나? 시대착오적인 소득주도성장론에 집착해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려 자영업자가 폐업하고 청년 알바생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5년간 공무원 13만명을 늘려 두고두고 세금 부담을 키워놓고 정작 연금개혁은 말도 꺼내지 않았다.
 셋째, 문 대통령은 진정으로 '인권 변호사'라 자처하시나? 과학보다 정치를 앞세우는 바람에 지난해 11월 '위드 코로나'와 대선 전후 '위드 오미크론' 정책 오판으로 수많은 국민이 희생됐다. 북한에 피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아들과 했던 약속도 끝내 외면했다. 국민의 삶을 책임진다더니, 사람이 먼저라던 인권변호사의 면모는 잘 보이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하기 전에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오직 평화"를 외쳤지만 평화는 정착되지 못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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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째, 문 대통령은 진정으로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믿으셨나? 진짜 믿었다면 순진하고 무책임하다. 지난 5년 허울 좋은 평화론에 빠져 허송세월하는 동안 북한은 남녘 동포를 향해 핵 선제 사용 가능성을 대놓고 입에 올린다. 심각한 안보 위기를 초래했다. 대북전단금지법을 만들어 북한 동포의 알 권리를 봉쇄했고, 탈북자들은 배신자 취급당했다.
 끝으로, 문 대통령은 진정으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사랑하셨나? 국민이 체감하는 자유와 민주주의가 지난 5년간 정체되거나 뒷걸음질 쳤다는 지적에 어떻게 해명할지 궁금하다.
 물러나는 대통령에게 "그동안 정말 수고 많이 하셨다"며 흔쾌히 박수를 보내지 못하는 마음 착잡하다. 문 대통령은 "퇴임하면 잊히고 싶다"는 말을 수차례 했다. 퇴임 이후의 삶에 대해 "못 가본 곳을 부부가 함께 가보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그냥 덤덤하게 살겠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그런 소박한 바람이 이뤄지길 빈다. 전직 대통령이 현실 정치판에 연루돼 소환되는 비극은 다시 없길 바란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