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보는 미·중 갈등의 본질
입력 2022.05.02 00:24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
미·중 전략경쟁의 본질은 뭔가. 미국에선 패권을 둘러싼 다툼이라 보는 견해가 많다. 중국이 부상하며 미국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는 거다. 중국은 어떻게 보나. 이와 관련 중국의 생각 단면을 읽을 수 있는 도서가 지난달 국내에 나와 눈길을 끈다. 『중국과 미국, 무역과 외교 전쟁의 역사』가 바로 그것이다. 저자 왕위안총(王元崇)은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에서 중국사를 공부했다. “시각이 다르면 서술도 달라진다”는 이유에서였다. 현재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모교인 델라웨어대학교에서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역사라는 긴 시간을 잣대로 미·중 갈등의 핵심을 파헤쳤다.
중국은 미중 전략경쟁이 오랜 시간 계속될 것으로 보고 역사의 긴 호흡 속에서 대처하려고 한다. [연합뉴스]
멈추면 주변이 보인다는 말이 있다. 때론 역사의 긴 호흡 속에서 접근할 때 현재 벌어지고 있는 미·중 전략경쟁의 본질에 더 가깝게 다가설 수 있다. 왕위안총은 이를 위해 1784년 미 상선 ‘중국황후(Empress of China)’호가 처음 중국에 도착했을 때부터 1911년 청(淸)이 무너질 때까지의 약 130년에 걸친 미·중 관계를 살폈다. 이를 통해 그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18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미·중 관계를 관통하는 건 미국 입장에선 오직 두 가지였다. 하나는 상업적 이익을 얻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의 가치관 전파였다는 것이다.
우선 중국에 대한 미국의 최대 관심사는 무역을 통한 이익 추구였다. 19세기 말 미 노스캐롤라이나의 담배왕 제임스 듀크가“지도를 가져와!”라고 외친 뒤 중국 지도 하단에 새겨진 인구 4억 3000만 명을 보고선 “여기가 우리 담배를 팔아야 할 곳”이라고 소리쳤다는 일화에서 보이듯 미국은 오로지 중국을 돈을 벌 곳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미 정권에서 본격화한 미·중무역전쟁이 새로운 게 아니란 이야기다. 그때나 이제나 이익을 둘러싼 충돌이 있을 뿐이라는 분석이다.
재미 중국인 역사학자 왕위안총은 중국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예나 지금이나 상업적 이익 획득과 미국의 가치관 전파 두 가지에 맞춰져 있다고 말한다. [중국 바이두 캡처]
미국의 중국에 대한 두 번째 관심사는 미국이 탄생 때부터 갖고 있던 선진 문명 전파의 사명감이다. 서구 각국은 제2차 아편전쟁이 끝난 뒤 베이징에 공관을 설치할 때 최고위직 외교관으로 대사가 아닌 공사를 보냈다. 중국을 서구와 같은 급의 문명국가로 보지 않은 것이다. 1793년 청의 건륭(乾隆)황제가 영국의 왕 조지 3세가 파견한 조지 매카트니 일행에게 세 번 무릎을 꿇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궤구고두(三跪九叩頭)의 예를 요구했을 때와는 입장이 천양지차로 변했다. 당시 미국은 후진 중국에 미국식 문명과 제도를 전파하는 즉 하늘이 내린 사명인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에 충실히 하고자 했다.
왕위안총은 미국의 대중 정책은 18세기 말부터 21세기 이르는 지금까지 미국의 상업적인 이익을 확대하고 미국 문명을 전파하려는 두 가지 목적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저장의 주장은 얼마 전 중국의 하이난대학 일대일로 연구원이 미국의 주중대사 니콜라스 번스를 연구한 결과 번스 대사가 중국에 가할 압력의 첫 번째는 무역 문제이고, 두 번째는 인권 문제라고 밝힌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미국은 예나 지금이나 중국을 상대로 돈을 벌고 또 중국에 인권과 자유 등 미국의 가치관을 퍼뜨리려 할 뿐이라고 중국은 보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시대에 따라 미국에 각기 다른 모습으로 등장했다. 때론 친구로 때론 적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역할은 계속 변하기 마련이다. [중국 중신망 캡처]
그리고 중국은 시대에 따라 미국에 각기 다른 모습으로 등장했다고 한다. 지금 중국은 미국의 경쟁자나 적으로 간주되지만 1979년 수교 당시엔 전략적인 벗으로 존재했다. 역할은 변하기 마련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앞으로 또 일정 기간 세월이 지나고 나면 중국은 다시 미국의 친구가 돼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또 중국과 미국이 현재 갈등을 빚고 있는 것도 처음은 아니며 마지막 또한 아닐 것이라고 본다. 역사의 긴 호흡에서 보면 현재 미·중 갈등 국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일 저런 일을 갖고 좋아하거나 슬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왕위안총의 분석은 중국에서 꽤 공감을 얻고 있다. 지난해 중국에서 책이 출판됐을 때 중국 내 최고의 미국 전문가로 통하는 왕지쓰(王緝思) 박사로부터 찬사를 듣는 등 베스트 셀러가 되기도 했다. 이를 토대로 중국이 향후 미국의 압박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에 대해 어느 정도 추론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최우선 관심사가 이익에 있는 만큼 적당한 밀당을 통해 미국에 상업적 이득을 안길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게 함으로써 미국의 보다 거센 압박에서 벗어나려 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두 번째 관심사인 가치관 전파에 대해선 충돌이 예상된다. 언제나 자기중심적 사고를 하는 나라인 중국이 절대 양보할 것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미중 갈등의 본질을 미국과 중국이 처음 역사적으로 접촉한 18세기 말부터 파헤친 도서 『중국과 미국, 무역과 외교 전쟁의 역사』가 지난달 국내에 번역돼 나왔다. [행성B 출판사 제공]
이는 미·중 갈등의 틈바구니에서 생존의 길을 찾아야 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적지 않다. 미·중이 이념이나 체제 문제를 둘러싸고선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을 벌이는 동시에 경제적인 부분에선 쉽게 갈라설 수 없을 것이며 이 같은 미·중 전략경쟁의 구도가 오랜 시간 지속할 것인 바 우리 역시 긴 호흡으로 미·중 갈등의 시대에 의연하게 대처해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어느 한 편에 서야 하는 것 아닌가 하며 조바심을 낼 필요 없이 미·중 갈등의 본질에 대한 우리의 이해부터 넓혀야 한다. 또 미·중 모두 국익을 둘러싼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만큼 우리의 대비 역시 철저하게 국익에 기반을 둬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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