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민의 정치 포커스] 승복이냐 불복이냐… 지방선거는 대선 연장전
1995년 민주·자민연합, 대선 ‘DJP연합’으로
DJ 정부 임기 초 ‘허니문 선거’서 여당 압승
2006년 지선 패한 민주, 이듬해 대선도 참패
4년 뒤 친노 부활, 2018년 자유한국당 몰락
정치 구도가 인물·이슈 압도하는 경향 보여
6월 1일은 제8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일이다. 제1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는 단체장을 뽑기 시작한 1995년에 시행됐다. 1992년 대선 패배 후 정계를 은퇴했던 DJ(김대중)는 1995년 지방선거에서 ‘지역등권론(地域等權論)’을 내걸고 돌아왔다. 그는 “그동안 TK, PK 패권주의 속에서 살아왔으나 이번 지방선거로 우리는 패권주의가 아닌 등권주의, 수직적이 아닌 수평적 대등한 권리를 가진 지방화 시대로 가고 있다”고 했다. 호남·충청권이 영남과 동등하게 대접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계기로 호남을 대표하는 민주당과 충청을 대표한 자민련이 반(反)영남을 내세우며 공조했다. 앞서 1990년 3당 합당으로 만들어진 반(反)호남의 영남·충청 동맹이 1995년 김종필의 민주자유당(민자당) 탈당과 자민련 창당으로 깨진 것이다. 이어진 지방선거 결과는 는 민자당 참패, 민주당 선전, 자민련 돌풍이었다. 민자당이 경기 등 5곳, 민주당이 서울 포함 4곳, 자민련이 충청 석권과 강원까지 4곳을 이겼다. 대구와 제주는 무소속이 이겼다. 이처럼 연합하면 이겼고 분열하면 졌다. 이런 지방선거 결과는 1997년 대선에서 호남의 DJ와 충청의 JP(김종필)가 손을 잡는 ‘DJP연합’으로 이어졌다.
1995년 지방선거에서 ‘지역주의 타파’를 내걸고 민주당 볼모지 부산시장에 도전한 노무현은 아군이 쏜 ‘지역등권론’ 폭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3당 합당을 반대하며 YS(김영삼)와 갈라선 노무현은 DJ의 명분 없는 정계 복귀에 반대한다며 결별했다. 그는 이듬해 총선에서 민주당 이름으로 정치 1번지 종로에 나섰으나 신한국당 이명박, 새정치국민회의 이종찬에게 밀려 3등으로 떨어졌다. 현실을 뼈저리게 자각한 노무현은 1997년 대선 직전 본인 표현대로 김대중에게 “투항”했다.
1998년 제2회 지방선거는 애초부터 결과가 예견되었다. 김대중 정부 임기 초반에 열린 허니문 선거인 데다 ‘IMF 사태’로 ‘나라를 망쳐 놓은 한나라당’이라는 프레임을 벗어날 수 없었다. 김종필 총리 인준을 수개월이나 해주지 않은 것도 ‘대선 불복’으로 보일 수 있는 몽니였다. 민주당이 수도권을 석권하며 10곳을 이겼고, 한나라당은 영남과 강원만 이겼다.
2002년은 한·일 월드컵과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였다. 제3회 지방선거(6월 13일) 다음 날이 한국과 포르투갈의 경기였기 때문에 선거 결과는 16강 진출 뉴스 뒤로 밀렸다. 앞서 이 선거 전망도 민주당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 아들 구속 등 악재가 겹치며 민주당 지지율이 급락했다. 한나라당이 수도권을 석권하며 11곳, 민주당이 광주·전남·전북·제주 4곳, 자민련이 충남 한 곳에서 승리했다. 이때 서울시장이 된 이명박은 현재까지 유일한 지방자치단체장 출신 대통령으로 기록되어 있다.
2006년 제4회 지방선거는 민주당 암흑기의 시작이다. 이 패배를 시작으로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까지 연속 참패했다. 2004년 총선에서 탄핵 역풍으로 152석을 확보한 열린우리당은 ‘4대 입법’ 폭주와 부동산 가격 폭등, ‘백바지’와 ‘난닝구’로 상징되는 친노와 반노의 분열로 지지 기반이 붕괴했다. 결과는 예상보다 더 참혹했다. 열린우리당은 광역단체장 중 전북 한 곳에서만 승리했다. 반면 한나라당의 박근혜는 이 선거에서 커터칼 테러까지 당하며 역사적 압승을 이끌었다.
2010년 제5회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이 반전에 성공했다. ‘폐족’ 친노가 2009년 노무현의 비극적 죽음으로 부활했다. 노무현의 오른팔, 왼팔로 불린 이광재가 강원도지사, 안희정이 충남도지사가 되었다. 이 선거는 교육감 직선제가 전국적으로 동시에 실시된 첫 번째 선거다. ‘무상 급식’ 이슈가 선거를 지배했던 교육감 중심 선거였다. 이 때 김상곤·이재정 교육감을 배출한 경기도는 진보 교육의 본거지가 됐다.
2014년 제6회 지방선거는 세월호 참사 속에 치러졌다. 세종특별자치시장 선거와 전국 단위 사전 투표가 도입된 최초 선거다. 새누리당이 경기도와 인천에서 신승하며 전국적으로 8곳, 새정치민주연합이 서울과 충청을 석권해 9곳에서 이겼다.
2018년 제7회 지방선거는 ‘드루킹’ 악재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보수 분열과 미·북 정상회담 등 한반도 이슈가 지배했기 때문에 민주당 압승이 예상됐던 선거다. 자유한국당은 대구와 경북 두 곳만 승리했다. 제주도지사는 무소속 원희룡이 인물론으로 돌파했다. 나머지는 전부 민주당이 이겼다. 2010년, 2014년 선거에서 성남시장이 된 이재명은 2018년 경기도지사 당선을 거쳐 2022년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었다. 이재명이 승리했다면 기초단체장 출신 첫 대통령이 될 뻔했다.
이번 지방 선거는 대선 연장전이다. 구도가 인물과 이슈를 압도한다. 대선 승복이냐 불복이냐를 결정하는 선거다. 아주 단순하다. 2006년 선거 때 45세로 처음 서울시장이 된 오세훈은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이기면 서울 시장에 네 번 당선된다. 2026년에 “5선 도전도 생각하고 있다”는 오세훈은 2027년 보수 진영의 가장 강력한 대선 후보다. 이번에 국민의힘 김은혜가 경기도지사가 된다면 마지막 남은 유리 천장을 깨고 최초의 여성 광역단체장이 된다. 앞서 2010년 서울시장에 도전한 한명숙은 0.6%포인트 차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또 이번 선거에서 중도 보수 경기도교육감 후보인 임태희가 승리한다면 ‘교육 권력’ 본진을 탈환한다는 의미가 있다. 현재 충청권에서 국민의힘이 선전하며 전국적 승세를 굳혀 가고 있다. 속속 발표되는 여론조사는 민심이 대선 승복 쪽으로 기우는 징후가 뚜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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