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소대장으로 복무하던 시절 육군 소대장과 함께 훈련한 적이 있다. 공군 부대로 소대를 이끌고 온 육군 소대장은 산불 진화에 나섰다가 곧바로 훈련에 투입된 탓에 전투 장구가 온통 숯검정이었다. 안쓰러운 마음에 소대 냉장고에서 꺼낸 물 한 잔을 권했다. 그는 "병사들이 수통에 든 미지근한 물을 마시는데 나만 냉수를 마실 수는 없다"며 사양했다. "물 한 잔인데 어떠냐"고 하자 "육사에서 배운 FM(야전 교범)대로 하는 것"이라고 했다. 행군 때 다른 장교들은 군장을 가볍게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육사 출신들은 그렇지 않았다.
▶국가관과 원칙에 투철한 사람을 가리켜 흔히 "사관생도 같다"고 한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일념으로 4년 군사훈련과 정신교육을 받는 생도는 자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육사는 그 사관생도의 전형으로 통했다. 육사는 1946년 문을 열었는데, 1·2기 생도 539명이 6·25 때 최전선에 투입돼 151명(28%)이 전사했다.
▶휴전 뒤에는 똑똑한데도 집안이 어려운 청년이 학비와 생활비를 대주는 육사를 택하기도 했다. 이들은 미군의 앞선 군사 행정 기술을 접하면서 부족한 게 많던 한국 사회의 엘리트로 성장했다. 비(非)육사 출신 군단장·사단장들도 참모는 육사 출신을 선호했다. 육사 출신 소대장·중대장이 이끄는 부대는 무언가 달랐다. 육군 전역자들이라면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육사는 5·16 후 호국의 간성(干城)이라기보다는 '정치군인'으로 더 많이 각인됐다. 불행한 일이었다. 결국 민주화 이후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육사 출신들의 이너 서클이었던 하나회 소속 장군들의 옷을 벗겼다. 이것으로 '정치군인' 시대는 막을 내렸다. 이제는 오히려 군의 권력화가 아니라 샐러리맨화를 걱정하는 상황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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