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방
서정민 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차장
드라마 ‘응답하라 1997’ 속 여주인공은 좋아하는 스타를 만나기 위해 그의 집 담장을 넘는다. 아이돌의 사생활을 죽자 살자 쫓아다니는 ‘사생팬(私生 fan)’의 단면이다. 그런데 요즘은 스타가 팬들이 노는 곳을 기웃거리다 쫓겨나는 일도 벌어진다. 일명 ‘고독방 강퇴(강제퇴장) 사건’이다.
‘고독방’이란 카카오톡 등 SNS에서 아이돌 덕후들이 스타를 응원하기 위해 만든 오픈 채팅방이다. 예를 들어 오픈 채팅 검색창에 ‘고독한 안산’을 치면 양궁스타 안산 선수 팬들이 수십~수천 명 모인 고독방 여러 개를 찾을 수 있다. ‘고독방’이란 이름은 텍스트, 즉 대화 없이 사진으로만 소통하기 때문에 붙여졌다. 잡담 없이 좋아하는 스타의 사진만 고독하게 즐기자는 의미. 때문에 일부 팬들은 간단한 질문·답 정도의 대화는 주고받을 수 있는 ‘안고독방’을 만들기도 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D.P.'에서 '한호열 상병'으로 분해 맛깔스러운 연기로 호평받은 배우 구교환의 고독방 엽기사진. 사진 온라인 캡처
흥미로운 건 진짜 스타가 고독방에서 강퇴당하는 경우다. 자신의 고독방을 찾은 스타들은 언론이나 SNS에 노출되지 않은 사진들을 올리거나 질문에 답하는 것으로 팬 서비스를 한다. 그런데 넷플릭스 드라마 ‘D.P.’에서 맛깔스러운 연기로 호평받은 배우 구교환(사진)이나 배구선수 김희진처럼 엽기적인 사진들을 올리며 팬들에게 장난을 치는 스타들도 있다. 그러면 팬들은 스타를 채팅방에서 강퇴시킨다. 사진 한 장 때문에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당연히 안 변한다. 더욱 더 지능적인 사랑을 할 뿐. 이 일화는 다음날 연예기사로 등장하면서 스타를 또 한 번 띄우게 되니 이 얼마나 지혜로운 팬덤 전략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