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찌
서정민 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차장
“나 때는 말이야”를 입에 달고 사는 ‘라떼상사’들의 레퍼토리 중 하나가 술에 관한 무용담이다. 혼자 소주 4병은 거뜬히 마셨다, 폭탄주 30잔을 마시고도 멀쩡했다, 체육대회 우승 트로피에 막걸리 두 통을 담아 원샷했다, 맥주 1000cc 잔이 기본이었다 등등. 진위를 가릴 수 없는 이 화려한 무용담은 언제나 ‘인생 술 총량의 법칙’으로 끝을 맺는다. 한 사람이 마실 수 있는 인생 술의 총량은 정해져 있어서 젊은 시절 술을 많이 마셨다면 나이 들어 술을 덜 먹게 되는 건 당연하다는 웃픈 변명.
술을 잘 못 마시는 ‘술찌’들이 500cc 맥주 잔 원샷 분위기를 낼 수 있도록 소주잔에 손잡이를 단 미니 잔. [사진 텐바이텐]
요즘 신조어 중에 ‘술찌’가 있다. 술 못 마시는 찌질이의 준말이다. 비슷한 뜻으로는 알찌(알코올 찌질이), 알쓰(알코올 못 마시는 쓰레기), 술쓰(술 쓰레기) 등이 있는데 누군가를 비웃기 위해 쓰는 용어가 아니다. 술자리에서 자신의 적은 주량을 미리 고백하며 유머러스하게 자신을 디스할 때, 또는 술 못 마시는 친구를 귀엽게 부를 때 사용한다. 이 분위기에 맞춰 온라인 쇼핑몰에는 500cc 맥주잔 원샷 분위기를 낼 수 있도록 소주잔에 손잡이를 단 ‘술찌 전용 잔’(사진)도 등장했다.
술 좀 마신다고 호기부렸다가 망신당하느니 처음부터 주량을 낮게 잡고 적당히 조절하며 마시는 게 현명하다. 며칠 전 들었던 전통주 홍보 플랫폼 ‘대동여주도’ 이지민 대표의 말도 떠오른다. “앞으로 좋은 술이 계속 나올 텐데 그걸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조금씩 오래 마시기로 했다.” 모든 술찌들이 ‘술지(術智·일을 잘 꾸미는 지혜)’를 터득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