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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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 스타일팀장
탕수육 소스를 두고 과장과 대리가 설전을 벌인다. ‘찍먹(찍어 먹기)파’와 ‘부먹(부어 먹기)파’의 대결. 이때 젊은 사원이 조용히 말한다. “덜먹(덜어 먹기)이 좋아요. 여기 앞접시 세 개랑 집게 좀 주세요.”
귀여운 레고 인형을 등장시켜 ‘건강한 식문화를 위해 반찬도 찌개도 덜어먹자’ 제안하는 농림축산식품부의 ‘덜먹’ 캠페인 영상(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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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축산식품부의 ‘덜먹’ 캠페인 영상. 사진 영상 캡처
코로나19로 촉발된 ‘뉴 노멀(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떠오른 기준)’ 시대는 식문화도 바꿔놓았다. ‘덜먹’과 ‘1인용 메뉴’가 보편화되고 있다. 비싼 가격 때문에 ‘2~3인이 먹기에 충분한 양’을 강조했던 특급 호텔들도 올해는 ‘1인1빙(氷)’으로 전략을 바꿨다. ‘독상’을 콘셉트로 한 한식 전문점도 늘고 있다. 일반 식당들도 동참하는 분위기다. “종업원 눈치 안 보고 ‘앞접시 하나 더 달라’ 말할 수 있어서 좋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한동안 찌개 냄비와 반찬 그릇에서 여러 사람의 수저가 맞부딪치는 우리 식습관이 코로나 시대의 ‘적폐’로 지적됐다. 위생상 안 좋은 습관인 건 인정하지만, 한국 전통 식문화 전체가 도마 위에 오를 일은 아니다. 고구려 고분벽화와 조선시대 그림·사진 등에서 확인할 수 있듯 우리의 전통 식문화는 본래 ‘덜먹’보다 고고한 ‘독상’이 기본이었다. 이것이 겸상문화로 바뀐 건 물자가 부족했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다. 계속되는 수탈에 그릇이라고 남아났을까. 역사의 풍랑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선회했던 식문화가 뉴 노멀 시대를 맞아 제자리를 찾고 있다.
서정민 스타일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