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가슴
서정민 스타일팀장
“낯선 여자에게서 내 남자의 향기가 난다.” 오래전 화장품 CF에 등장했던 광고 카피다. 비슷한 느낌으로 요즘은 가수 장범준의 노래가 인기다.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진 거야~.” 인간의 후각은 이만큼 섬세하고 또 기억력이 좋다.
‘코르가슴’은 냄새(향) 때문에 쾌감이 최고조에 달해 흥분된 상태를 말한다. 이런 신조어가 등장했다는 건 그만큼 향에 민감해졌다는 얘기다. 실제로 국내 향수 시장 매출은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바이레도 향수 ‘블랑쉬’
흥미로운 건 밀레니얼 세대의 달라진 향수 취향이다. 이들은 ‘좋은 향’에 시대의 가치관까지 얹었다. 일명 ‘젠더리스(genderless·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유니버설(universal·보편적인)’ ‘젠더 뉴트럴(gender neutral·성 중립적인)’ 향수의 잇따른 출시와 인기다.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고 중요시 하는 이들에게 남성적인 머스크 향, 여성적인 플로랄 향 등의 구분은 구시대적이고 불필요한 선 긋기일 뿐이다.
스웨덴 디자이너 벤 고햄이 만든 ‘바이레도’(사진) 향수 전 제품은 보틀(용기)과 레이블, 각각의 향 이름까지 젠더리스를 지향한다. 올해 5월 국내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55.8% 증가했다. 젊은층에서 인기 있는 럭셔리 패션 브랜드 구찌는 지난해 가을 브랜드 역사상 처음으로 유니버설 향수가 콘셉트인 ‘메모아 뒨 오더’를 출시해 화제를 모았다.
두산 백과사전에 따르면 인간의 후각은 약 4000가지 종류의 냄새를 인지하고 기억할 수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수많은 향을 남녀로 구분하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좋은 향에는 좋은 기억이 있을 뿐이다.
서정민 스타일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