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렇구나

[김성윤 칼럼] 누가 어떻게 반(反)지성주의에 대항하나?

bindol 2022. 5. 31. 16:12
 

성숙한 시민의식과 논리로 반지성주의에 맞서야 민주주의가 지켜진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입장을 조정하고 타협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진실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합리주의와 지성주의입니다. 국가 간, 국가 내부의 지나친 집단적 갈등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고,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해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문장의 핵심을 살펴보면 두 단어다. 그중의 하나는 진실이요, 다른 하나는 반지성주의다.

 

미국의 역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태터(Richard Hofstadter)는 1963년에 출간한 ‘미국의 반(反) 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란 책에서 미국이 유럽에 비해 반지성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은 ‘이데올로기가 필요 없다. 미국 자체가 이미 하나의 이데올로기라고 했다. 그는 미국의 반지성주의를 조장하는 요인 중 하나로 다수의 힘에 의한 의사결정을 민주주의로 보는 선동정치라고 했다. 

 

그는 지성(intellect)과 지적 능력(intelligence)을 구별했는데 저학력 소지자보다는 고학력 소지자가 지적 능력은 높다. 그렇다고 그에게 지성까지 겸비했다고는 볼 수는 없다. 한마디로 지적 능력이 지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고도 했다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는 1950년대 미국 사회를 반공의 광기로 몰아갔던 매카시즘에 주목한 책이다. 집단의 정체성을 내세워 지성을 배제하고, 반대 세력을 악마화 하는 반지성주의가 종국에는 사회를 나락으로 떨어뜨린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한국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의 예를 든다면 ‘좌표 찍기’가 있다. 이는 정치인, 검사, 판사, 지식인, 나아가 일반시민까지 자기들 마음에 안 드는 입장을 개진하는 사람의 신상 목록을 SNS 등에 공개해 문자폭탄을 유도한다. 그것을 통하여 심리적으로 응징하는 인터넷 시대의 무서운 집단폭력이다.

 

 좌표 찍기에 대해서 백번을 양보하여 그것이 민의와 민심이라고 치자. 그리고 그 순기능과 역기능을 살펴보면 역기능이 더 많음을 알 수 있다. 반대를 위한 반대, '나만 옳다'는 주장과 인신공격성 댓글은 반지성주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적인 입장에서 볼 때도 반지성주의는 독재정치 체제에서 나와 다른 의견을 강제로 누르기 위해서 주로 동원되었다. 비판적인 지식인들을 ‘나약한 엘리트’로 몰아세운 후 정치적 탄압을 가한 것은 나치 독일이었고, 마오주의에 입각한 이상적 사회를 건설하겠다며 지식인 계급을 무참히 학살한 것은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주의 폴 포트 정권이었다.

 

 이 두 사례는 반지성주의가 무엇이고 왜 안 된다는 것을 확연히 보여 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때 다수의 힘으로 진실을 말하려던 전문가를 침묵하게 만든 일도 있었다.

 

 탈 진실 개념의 등장은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탈 진실에 대한 개념 정의를 한 학자는 랄프 케예스(Ralph Keyes)다. 그는 탈 진실이란 ‘진실을 벗어나는 것에 허용적인 윤리 체계’라고 했다. 그는 이 현상의 핵심은 사람들이 과거보다 거짓말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말하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 사회적 맥락과 이를 부추기는 사회의 작동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코로나19 이후에는 인포데믹(infodemic·정보 감염증)이 진실의 유통을 방해하고 있다. '인포데믹'은 정보를 뜻하는 인포메이션(information)과 전염병을 뜻하는 에피데믹(epidemic)의 합성어이다. 이른바 '악성 정보 확산이나 정보 전염병'이다. 즉 잘못된 정보가 미디어와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퍼져나가는 현상을 말한다. 

 

거짓 정보는 지역사회와 국가, 국제사회에 혼란을 야기하는 반지성적인 일이다. '인포데믹'은 유튜브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트위터, 인스타그램, 유튜브, 레딧, 갭)채널에 게시된 글을 통해 가짜 뉴스나 악성 루머를 빠르게 퍼트려 사실을 왜곡시키곤 한다. 

 

잘못된 진단과 전망이 마치 고급정보인 양 전염병처럼 급속히 퍼져 오히려 혼란을 초래하는 반지성적인 현상이다. 

 

이러한 반지성적인 현상을 방치하는 경우 정부 기관이나 공신력 있는 언론마저도 부정하고 개인이나 집단의 신념과 감정에 부합되는 정보만이 진실이 되는 '정보편식사회'가 될 수 있는가 하면 대중은 경험과 객관적인 사실을 믿으려고 하나 인공지능(AI) 기술로 이들마저 속일 수 있는 정보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인공지능 악용사회'가 될 수 있다. 

 

사리사욕을 앞세운 AI 악용과 정보편식으로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허물어져 사회분열과 혼란이 극에 달한 '혼돈의 시대'가 될 위험성도 있다. 

 

그래서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반지성주의와 맞설 것을 강조했다. 문제는 누가 어떻게 인데 그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성숙한 시민사회의 육성과 힘이 아니라 논리로 반지성주의와 맞서는 것이다.